리차드베이의 루비 아줌마

예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났던 어느 아줌마 이야기

by 전희태
라차드베이2.jpg 리차드베이의 석탄 야적장

1994년 9월의 어느 날.


입항 접안을 한 밤중에 시작하더니 출항 이안 작업도 2340시에 적하 작업이 끝난 관계로 역시 한 밤중에 이뤄지게 되었다. 그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던 날씨가 조금 멈칫하여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는 시간에 “올 라인 렛고(All line let go)”를 외치며, 계류삭을 걷어 들이니 다행스럽다.


K선사의 군자란호도 우리가 올 라인 렛고 명령이 떨어질 무렵 마지막 TRIMMING 작업 단계에서 잠시 작업을 쉬고 있었으니 몇 시간 뒤면 그 배도 출항이 이뤄지게 될 것 같다. 이번 항차 이곳 리챠드베이에서 우리 배를 처음으로 취급한 대리점은 도착을 위하여 항해중일 때와 도착 후 외항 대기 중에는 좀 갑갑할 정도로 연락이 뜸한 상황 하에서 일을 했는데 일단 입항하고 나니 전에 사용했던 다른 대리점들과는 달리 담당 직원이 자주 본선에 나타나 필요한 사항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등 활발히 일하는 느낌을 준다.


석탄 부두에서도 밀항자 두 명을 발견한 어느 배가 항구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대리점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한 여기 주민들로 부터 치안상태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란 우려를 들으며 일 년에 경찰관의 인명 피해가 300여명이나 된다하니 하루 한 명 꼴로 총이나 칼에 의해 당하고 있다는 통계이다.

리차드베이1.jpg 리차드베이 야적장에 줄지어 접안중인 덩치(Cape size bulk carrier)들

노동 인구의 반이 실업 상태라는 이야기는 쇼핑 몰에서 차를 기다리기 위해 쇼핑 손수레를 끌고 문밖을 나서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맨발의 아이들이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옆으로 다가와 서서 중얼거리듯 무어라 하며 구걸하는 아이들은 무시하고 있으면 잠시 딴 짓을 하다가도, 틈을 보이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진드기 작전을 써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이곳 주민들 특히 백인들에게는 우리한테와 같이 달려든다― 괴롭히는데 만약 잔돈이라도 주는 날이면,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이 달려들어 혼잡을 이루기 때문에 함부로 자선을 베풀기도 힘든 일이다.


만델라가 집권한 후 사회적으로 억눌려 살던 상태에서 벗어나 많은 힘을 갖게 된 흑인들이 순간적인 기분에 의하여 타인에게 특히 백인들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사태가 백인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되어 어지간한 지식인과 약간의 돈 있는 사람들은 자꾸 이 나라를 떠나려는 마음들을 가지는 모양이다.


내 놓은 매물의 가게들은 많지만 매매가 이뤄지는 것은 아주 적고 경제도 바닥을 헤매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텔레비전에 출연한 극단주의자들은 현재의 만델라 대통령이 물러나게 되면 백인들을 모두 쫒아 내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을 방영한 적도 있다하니(죽이겠다는 뜻이라고 말을 전하던 이는 풀이하여 들려주었다.) 앞으로 어떤 사태가 발생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난국으로 점점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 나라가 많은 자원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에 단지 더 이상의 경제난국은 도래치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가진 사람도 있기는 한 모양인데 이제는 힘을 가진 흑인 쪽이 유리해진 새로운 흑백갈등 때문에 흑인을 강력히 통제할 수 있는 흑인 지도자가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항차 이곳을 방문 했을 때 민속촌을 구경하였고, 이번에는 좀 더 거창한 관광 계획을 예정해 보다가 그런 어수선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슬며시 겁이 나서, 배만 지키고 있다가 떠나기로 한 것이다.

늘 바삐 돌아가던 컨베이어 벨트들

루비 아줌마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기항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리차드베이. 나는 거기서 10년 이상 거래를 하며 우리 배에 부식 조달해 주던 한 아줌마를 알고 있다. 나이든 슬라브족 여인네 특유의 조금은 뚱뚱한 몸매를 가진 아줌마는 예전 어렵게 구소련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이민 일 세대로 그리스계 남편과의 사이에 일남 일녀를 둔 억척스러운 사람이다.


만델라가 집권을 하고 난 후부터 그녀의 말투는 다시 이민의 보따리를 싸더라도 남아공을 떠나고 싶단 마음을 펼쳐 보이곤 했다. 마시라고 내어놓은 사이다 한 캔을 자신은 사양하며 집에 있는 딸애에게 갖다 주고 싶다며

곱게 싸서 핸드백에 넣어 드는 소녀 같은 마음의 그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리차드 베이를 떠나고 싶게 했을까?

상륙시 얻어 탄 그르렁대는 소리를 가졌던 그녀의 낡은 차안에서 땅에서 조심 할 사항을 설명하는 목소리의 톤이 갈수록 높아진다. 군데군데 패인 아스팔트 풀이 수북이 자란 갓길을 가리키며, -저 길처럼

아스팔트 길은 좁아지며 도시는 외곽에서부터 다시 정글화 되고 있단다. 이렇게 비가 오고 난 후 날이 개이면 예전엔 없었던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물 넘친 수렁에서 기어 나온 악어가 한길 복판을 가로지른다고....

그래도 사실 이런 일은 다 참을 수 있는 일이지만...못 참아 하는 건, 저 길처럼 변화하는, 무법의 정글화라고 전했다. 이유도 별로 없이 남의 생명을 장난같이 빼앗아 가는 인간 떠난 군상들, 치안이 불안하니 우리 - 백인 -들은 설 땅을 잃어버린 상실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탄하던 그녀. 만델라가 은퇴하거나 세상 하직하는 날

이 나라 안의 모든 백인을 쫓아내겠다고 공언하는 공공연한 발언이 버젓이 TV에 방영된다며 그런 풍토에서 그들이 마음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뾰족한 송곳 끝 같은 여유로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17세기 후반 네델란드인 들의 진출로부터 시작된 수 백년 백인 치하 인종차별 굴레가 벗겨지며 예전의 백인이 누렸던 권리를 같이 갖게 된 흑인이 역사적인 그 의미의 소중함을 이해 못한 채 폭력을 불사한 월권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자 많아지니 은행을 드나들 문들은 배들이 운하의 도크를 지나듯 열리고 닫힘이 내 맘대로가 아닌 문과 문 사이에 들어서면 열고 닫음을 기계가 나서서해준다고도 전했다.


국내 탈출을 시도하는 밀항자가 점점 늘어나서 항구를 찾아오는 모든 선박에는 밀항 방지를 위한 비상 통보가 발동 중이었고, 흑백을 불문한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강력한 독재를 품은 흑인 지도자라도 나타나서 자유분방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흑인들을 휘어잡아 최우선으로 치안 안정을 바라는 마음 갖고 있다는데....

리차드베이4.jpg

올바로 물꼬를 터주며 역사를 창조할 줄 아는 좀 더 강력한 제2의 젊은 만델라가 나타나 사뭇 위험하게 흐르려는 이 나라의 사회적 현실을 바르게 잡아 주길 간절히 비는 사람들 많단다. 나도 그렇게 같이 간구하는 이유는 이곳 남아공에 기항할 때마다 귀찮은 밀항자 수색을 출항 때마다 하지 않아도 됨을 원하기 때문이다.

*벌써 이십 년 전의 이야기로 지금은 당시 아줌마의 우려와는 달리 치안도 경제도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루비 아줌마는 남아공이 안정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옛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후문을 벌써 십수년전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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