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떠름한 위치확인 보고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위치보고

by 전희태


보트데크에서 지는 해를 바라다 봄


동해 바다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지긋지긋한 저기압의 공세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먼! 하는 안심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그게 그냥 한 갖 꿈같이 되어버리려 한다. 다시 자라나는 저기압이 부산 지역 하늘에 걸쳐 있으면서 북동쪽으로 20 KNOTS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바로 우리 배의 머리 위를 지나서 북해도를 거쳐 북태평양으로 나가 새로운 폭풍으로 맹위를 떨치려는 마치 폭풍 수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지게 하는 거다.


이제 자라나려고 시작하는 참이기에 바람이 불긴 해도 알류샨 열도 부근에서 만나는 것과는 그 힘의 비교가 되지 않게 약하지만 추적거리는 비를 계속 내려주며 바다 위로는 백파마저 만들어 조금씩 흩날리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번 항차 참 끈질기게도 달려드는 황천에 기가 막히지만 이 정도로 북 태평양의 어려움도 끝날 때가 가까워졌구나, 마음을 추스르기로 한다.


게다가 연가로 하선한다는 결정이 되어 하선 일자를 통보받고 있으니, 더욱더 힘들어지는 마음이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제대 말년에 만나는 사고 같은 형편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심성마저 챙기려 하니, 그 또한 힘들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보태고 있다.


오후 세시면 아직 한낮이 건만 겨울의 그 시간에다 비 때문에 더욱 어두워진 상황이라 브리지에 올라가도 시원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답답한 심정이 자꾸만 치올라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당직 잘 서라는 부탁의 말을 하며 급히 내려왔다.


1620시 인마세트 전화기가 울어 수화기를 들어 응답해보니 일본 해상보안청에서 걸려온 전화이다.

지금 동해의 기상 상황이 악천후인데 안전은 괜찮은가? 하고 물어오며 매일의 위치 보고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겠다고 대답해주며 전화를 끊었다.


통상 태평양을 건널 때면 이틀에 한 번 꼴로 미국 USCG에 위치보고를 한다. 관할 해역이 변화되면 변화된 구역을 관장하는 USCG로 위치보고를 해왔다. 절대로 이 일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고 하나, 미국에 입항하여 USCG의 임검 시 제일 먼저 묻는 것이 USCG에 위치보고를 하고 있는가?라는 말이니 그들과의 유대가 아쉬운 형편의 본선에선 저절로 그들에게 보고를 하며 항행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180도 선을 경계로 그 서쪽은 일본이 같은 일을 관장하고 있다. 따라서 본선의 지난 며칠간 위치보고가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유추를 해본다. 왜냐하면 180도선을 넘어서며 미국으로 보내던 위치보고에서 벗어난 후 일본 해상보안청으로 하게 되는 보고는 아무래도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등한히 하며 항행하였던 것이다.


대양을 항해하여 자국의 영해를 지나거나 들어 올 예정을 가진 선박으로부터 이렇듯 위치보고를 받는 세계적인 추세는 200 해리 전관수역이 발효된 이후 더욱 심해진 인근 해양국가에서 저마다 나서서 행하는 일 같아 보인다.


대한민국이 모든 면에서도 세계 해양 강국의 반열에 들어가 있다고 여기고 싶은 게 우리들의 마음이지만,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널따란 국토와 해양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북태평양을 양분하듯 나누어 관할하려는 미국과 그에 동조하는 이웃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어단가 불편한 심정이 들어서는 우리네 심정이 그런 보고 사항을 특히 일본에 대해 제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선박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이 좋은 제도이지만 다른 면으로 볼 때 어딘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정보가 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약자의 관점도 자꾸 보이니 아무래도 표현하기가 뭣한 불편한 점이 내재하고 있어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은근히 기피해주고 싶은 보고제도이다.


더구나 이미 동해에 들어섰으니 더 이상 그들-일본 해상보안청-에게 위치보고를 하려는 마음은 이미 버리고 있었기에, 어제의 위치보고를 최종으로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화를 걸어와, 위치보고를 해달라고 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 야박하게 대했다가 어떨지 모를 다음을 위해, 한번 정도 더 해주고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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