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덕(鐵德)

배와 좋은 인연

by 전희태


C6ħ4(1310)1.jpg 보트데크에서 뜨는 해를 바라다 봄


새벽의 어둠 속에 한 번씩 침투해오는 파도에 휘청거리는 배가 너무나 안쓰러워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알아보려고 갑판의 수은등을 밝혀 본다.


마침 옆으로 쳐 올라오는 너울의 끝이 그대로 갑판에 올라와 휘젓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심술궂은 머슴애들이 넓은 운동장은 놔두고 여자 애들이 고무줄놀이하는 좁은 공간에 들이닥쳐 훼방꾼 노릇을 해서, 애달파하는 여자 애들 모습에 환호하는 듯 그렇게 갑판을 휘젓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내일모레 새벽이면 광양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내이니, 그냥 우리들의 안마당이라 해도 괜찮을 동해에 들어섰는데도 이렇게 철없이 날뛰는 선 머슴애 같은 파도와 바람과 다투고 있자니 짜증이 사그라질 엄두를 안 내고 있다.


그리고 자꾸 다른 때의 항해와 비교되며 바람과 파도를 잘 피해 다닌다는, 항해의 쇠덕(鐵德)이 있다고, 자부하던 나의 전통이 깨지려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조차 품게 한다.


바다. 지구 상 인간(사람 사이)의 발길을 서로 갈라놓게 만드는 거대한 자연이다.

이 바다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배를 만들어 그 바다를 건너서 오가고 있다.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바다의 위력 앞에 단단히 버티고 이겨 나가기 위한 그런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재료가 쇠, 즉 철(鐵)이다.


그렇게 쇠로 만들어진 배이지만, 쇠가 아닌 유연한 물건 같이 다스릴 줄 아는 뱃사람의 몸에 밴 그 무엇을, 우리는 쇠덕(강하게 읽어보는 발음 그대로 쐬떡)이라 부르며 바다 위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쇠가 단단해도 파도에 당하면 찢어지고 부러지는 수도 있고, 구멍이 나는 경우도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은 쇠가 약해서라기 보다는 타고 있는 사람의 쇠덕이 없거나 약해서, 지는 거라고 여기 기조차 하는 것이다.

여하튼 쇠덕이 있다는 것은 항해, 정박, 작업등 선박이 물 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안전하게 의도했던 대로 실시하여, 맡은 바 일을 무사히 잘 해결하는 능력을 뜻하는 셈이다.


사람들 과의 사이가 좋은 사람에겐 인덕(人德)이 있다고 이야기하듯, 어떤 선박이라도 책임지고 운항하는데 쉽고 안전하게 하여간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결과를 갖는 사람에게 쇠덕이 있어서 그렇다며, 태풍이라도 헤치고 들어온 선장한테는 덕담으로도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본인의 승선 생활을 스스로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타인도 인정하는 뱃사람이라면, 쇠덕이 있는 뱃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충족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는 항목이 항해 운이 좋은 것이다.

바람도 파도도 마치 피해 가듯이 만나지 않은 상태로 장기 항해를 완수 완성하는 것. 그것이 뱃사람으로서는 가장 바라는 일 중의 하나이므로 그걸 쇠덕의 제일 항목에 넣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대양을 무사히 통과하여 필요한 항구 간의 이동을 완수하는 일이 항해 일진 데 결국 쇠덕이란 바다 위에서의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쳐주는 능력일 수 있겠다.

이번 항차 국내를 떠나 서부터 다시 돌아오는 오늘까지 본선 앞에 나타났던 여러 가지의 일을 모두 무사하게 끝맺음하며 오게 된 것도 어쩌면 나의 쇠덕에 기인한 결과로 보며 스스로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국제적인 협약을 통해서, 모든 운항 중인 선박이 시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서도, 별다른 지적 없이 끝냈다는 것은 새로운 쇠덕을 일구어 냈다고 자부하고도 싶은 일이다.


PSC(PORT STATE CONTROL)라는 단어로 인명의 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차원에서 선박의 현 상황이 이들 규격에 맞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일이 있다.

배 타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조치로도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이 일의 완성은 진짜 뱃사람의 능력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쇠덕일 것 같다.

하지만, 그들 선원들은 현장에서 점검을 당하는 객체의 일부분이기도 하기에 항구에 입항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일이고, 때에 따라서는 고통스럽게 까지 여겨지는 점검이 바로 이 PSC 점검이다.


선박 기국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기항지의 해상 관할 기관의 서베이어가 시행하는 점검에 깨끗이 패스하지 못한다는 것은 배의 묶임을 포함해서 지체가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수리 정비해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으므로 우선적으로 선주의 입장에서도 결코 편한 점검은 아니다.


이번 캐나다 기항 시에도 이 점검을 받기 위해 가는 동안 내내 선체 정비와 수리를 시행하며 갔었고, 결과적으로 그 점검에 패스하였기에 무사히 짐을 싣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손이 모자라고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넘겨진 일들이 돌아오는 길에 계속 만나진 파도로 인해 그야말로 자연에게서 PSC 점검을 받는 일(?)이 생긴 셈 같이 되었다.


파도가 갑판으로 올라오면서 부실한 플랫폼과 핸드레일을 사정없이 떼어서 부셔버리고 완전히 구부려 놓아서 새로이 부착하여 수리를 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 놓아, 가장 확실하게 수리를 행하지 않을 수 없는 PSC 점검을 파도로부터 직접 지적받은 셈이다. 이런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쳐가며, 예정한 입항을 이틀 앞에 둔 오늘, 새삼스레 쇠덕이 내 옆에 있어 줌이 고마울 뿐이다.


제일 먼저 만나는 회사 사람들의 인사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입항하게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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