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바람에 고생 많이 했지요?

배에 부는 바람과 남자가 피우는 바람이 같은 의미라는 아내의 꿈

by 전희태
E703(4093)1.jpg 광양 외항 대도 남방 2 마일 VLCC 선 대기 묘박지에서 만난 일출 광경


수평선은 가까워지고, 그 너머 우리나라의 산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동해 연안이 가까이 접근되는 연안 항해로 들어 선 것이다.

이번 항차 내도록 젖혀 두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어 스위치를 켜주어 안테나 수신감도 표지를 확인하면서, 아내의 휴대폰에다 바쁘게 전화 걸기를 시도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으응~ 왜 안 받는 거지...

연결 신호음은 그런대로 잘 가고 있는데 받아 주질 않고 있다. 휴대폰 폴더를 접었다가 다시 펴 들어 이번에는 집 전화의 번호를 찍어준다. 역시 연결 신호음이 뚜~우 하고 울려주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 이번에는 금방 수화기를 들어주어 딸깍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반갑게 소리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어, 전화가 되네요. 저예요.

아내가 대답을 하면서,

-좀 전에 제 휴대폰에다가 전화를 했어요?

하고 묻는다.

-예, 그랬어요.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 왔는데, 끊어지잖아요.

-한참을 걸어도 받지를 않아 집 전화로 다시 건 거예요.

-그래요? 근데 어디쯤 오신 거예요?

-부산 앞, 아니 울산 앞바다를 지나고 있어요.

-예?, 왜 오늘 내려오라고 안 그랬어요?

-아직 도착은 내일이지 않아요.


호주에서 올라올 때라면 도착 이틀 전이면 아직 전화가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캐나다에서 오면 동해에 들어서 그 끝단쯤 에 도착하게 된, 날짜로 도착 이틀 전쯤 되어도 전화가 터지니 의외로 빨리 걸리어 온 전화가 마치 오늘 낮이면 도착될 것 같이 가깝게 느껴져서 묻는 말이다.


-광양 도착은 오늘 밤이지만, 앵커를 놓고 기다렸다가 부두에는 내일 아침에 대어서 그래.

-예에, 그렇군요.

-여보! 바람에 고생 많이 했지요?

-뭐 그저 그랬어...


이제 무사한 입항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그간 만났던 바람과 파도 이야기를 하려니 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우물쭈물거리다가,

-왜? 내가 바람피우는 꿈을 이번 항차에도 또 꾸었어요?

해 본다.

-맞아요, 이번에는 어떤 술집 같은 데, 여러 여자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꿈을 꾸었지요.

한다.

-그건 좀 억울한 꿈이란 말이 예요.

하필이면 내가 여자들과 놀아나는 꿈을 꾸어서 바람 만난 것을 알아본단 말이야? 하는 실상과 다른 억울한 누명에 심정이 씁쓸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여자들과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인 아내의 꿈이 있었던 항해에서는, 이상하게도 우리 배는 꼭 바람을 만나 고생을 좀 한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게 그런 꿈이 있었고, 바람도 파도도 역시 많이 만나면서 여기까지 온 셈이다.


-사실 바람이야 좀 있었지만, 그건 이 시즌 북태평양에선 당연한 거고요.

-중요한 거는 내일 첫차로 내려오는 거랍니다. 알지요?

말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희한한 아내의 꿈꾸는 방식에 다시 놀라움을 삭이면서 내일 광양으로 아내가 내려오는 이야기로 말귀를 돌린다.


-그럼요, 내려가야지요. 아침 첫차로 가면 되나요?

아내도 다시 만나게 되는 기쁨에 마음을 돌리어 정겨운 목소리로 받아준다.

-맞아요. 지난 항차에 내려왔던 차와 같은 차를 타면 되어요.

전화를 끊고 난 후, 혹시 아내가 꿈속에 만났든 여자들 수와 맞추려고 또 다른 저기압이 달려드는 건 아닐까? 우스개 같은 걱정을 떠 올려 보다가 피식 실소를 한다.


저녁 21시 15분. 광양항 외항에 도착하였다. 대도 남방 2 마일 해역의 대기 투묘지에 무사히 찾아들어 예정했던 해역에 정밀 투묘를 했다.

VHF 전화로 광양항에 도착 보고를 통보해 주니, 내일 새벽 여명이 틀 무렵 도선사가 승선하여 오전 중에 부두에 접안하는 스케줄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해준다.


이번 항차 복항의 항해 완수로 인해 편안한 마음이 된 가운데, 하룻밤을 푹 잠들 수 있는 내방 침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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