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 하선, 한바다 연수원에 들어가다

학창 시절을 잠깐 회상 회상해보며

by 전희태
100817-행선지가 바뀌는데 011.jpg 이런 풍경들이 우리를 다시 바다로 불러 들이는 일에 일조를 한다.


어머님의 팔순을 위한 가족 간의 행사를 위해 벌써부터 신청해 두었던 연가를 위해 하선을 기다리고 있다.

내 편의를 생각한 나름대로의 하선 일자는 모레쯤 되었으면 바라고 있었지만, 교대자는 금일 오전에 온 다기에 준비해 두고 있던 교대용 서류를 챙겨 놓고 기다렸다.


승선한 새로운 선장과 마지막 서명을 나누어 교대를 마치고, 배를 떠나기 위해 현문 트랩을 내려오려 할 때였다. 국내에 기항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당직 중이 아니면 거의가 상륙을 해서 별로 만나지를 못했지만, 국내에 기항하면 오히려 상륙이 제한받고 있는 상태로 배에서 근무해야 하는 중국동포 선원들이 모두 모여 와서 아주 진지한 배웅을 해준다.


그동안 그들을 받아서 선원으로 고용하는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알아서 내 깐에는 열심히 그들을 다독이며 배려해주려는 마음으로 일을 했는데 그런 저런 게 모두 정이 드는 기제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혹시 국내에 기항했을 때 육지에서의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배를 몰래 떠나는 중국교포 선원들이 종종 있기에, 국내 기항 시 그들에게는 상륙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를 떠나간 동료들 처사를 비난하는 심정을 가지고 더 이상 같은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의도에서 나머지 중국동포 선원들에게 상륙 제한을 가하는 것이 미안한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계약한 배를 타고나면 다시 그 배를 타기 어려운 그들과는 또다시 만날 확률이 희박하지만, 건강하게 승선기간을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해주며 착잡한 마음으로 배를 떠났다.


기관장과 일 항 사도 현문 앞까지 나와서 연가를 잘 쉬시고 다시 오세요. 인사를 한다. 내가 이 배를 책임 맡고 있는 책임 선장이므로 연가가 끝나는 대로 다시 오겠기에 하는 인사말이다.


연가 하선으로 이제 버스를 타고 집을 향하고 있는데 회사로부터 연수원에 입소하여 교육받으라는 연락이 와 있다는 전언을 듣는다. 바쁘게 지날 연가 기간을 짐작해 본다.


뱃사람에게 연가 란, 집을 떠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뤄 두었거나, 새롭게 해 보고 싶은 일들로 가득 찬 기대에 부풀어 있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첫 할 일로 연수교육을 배정받았으니, 이번 연가도 그저 바쁘지만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지날 것 같은 예감을 품게 한다.


집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자고 난 후, 지정받은 시간에 본사로 출두하였다.

을씨년스럽게 휑하니 비어 있는 본사 16층 강당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담당자들이 와서 인원을 체크하여 두 파트로 나누어 청평에 있는 연수원을 향해 떠나도록 배려해 준다.


나는 일차로 떠나는 회사가 준비한 관광버스에 승차하여 연수원을 향해 떠났다. 올림픽대로 강동대교를 거쳐 팔당호를 끼고 구도로를 달려 청평에 도착한다. 지난번 연수 교육받을 때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던 연수원 부근의 도로가 모두 정비가 되어 있어 한결 부드럽게 달린다.


며칠 간의 연수기간 중 기숙할, 배정 받은 방은 온돌방으로서 세 사람의 선장이 쓰도록 되어 있었다. 룸메이트로 누구와 있게 되는지에 관심을 가져본다.


한 사람은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닌 시인 선장인 김 성식(주*1) 선장이고, 다른 한 이는 일반 출신으로 회사의 탱커선에 책임 선장을 맡고 있는 엄 선장이다.


모두들 단독으로 사용하는 자신의 방을 가지고 근무하던 사람이라, 세 사람이 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침실이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럴 때 예전의 학창 시절 기숙사의 끈끈한 정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으로 받아들인다. 단지 잠을 잘 때 코를 고는 버릇이 어떨까? 좀은 걱정이 든다.


주 *1 : 한국 문학사에서 해양 문학사의 성립이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 유일의 선장시인, 세계 해양 문학사에서도 '가장 오래 배를 타며 시를 쓰는 현역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가도 받고 있던 시인으로 1942.5.15. 함남 이원 출생. 197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청진항>으로 시인 등단. 2002.3.19 지병인 임파선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계속 현역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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