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험란한 길을 향해 가야하는 심정
오늘 아침에 출항하려던 예정이 UNLOADER의 고장 때문에 지체되어 오후에로 바뀐 것 까지는 어제 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 할 수 있게 해준 시간적인 여유를 내게 주어서 좋았던 셈이다.
그러나 고장 시간이 길어지며 16시 27분의 고조 정조시에 배를 부두에서 떼어내려던 빡빡한 예정이 또 30분이 더 늦어진 17시에야 겨우 시작되어 출항에 임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힘들었던 17시 출항이 결정되기까지에는 본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사실상 1630시까지 양하 작업이 끝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계속 1640시 까지는 끝내겠다며 출항의 데드라인으로 결정한 1630시를 포기치 못하게 하역회사는 물고 늘어졌다.대리점은 이미 수배해 놓은 예인선과 도선사의 도착으로 출항이 안 될 경우 자신들이 받게 될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염두에 두게 되니 은근히 출항해줬으면 바라는 눈치다.
처음 전화를 받은 본사의 담당 대리는 내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 줄로 알았는지, 선장의 고유 권한과 의무를 언급하며 나의 판단에 맡긴다는 투였는데, 다시 전화를 받게 된 그 위 직급의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출항을 해달라는 부탁으로 통화를 이끌어 간다.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일에 기필코 동참해야 하는 현장 입장에서 출항하는 쪽으로 결정짓고 출항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현장 책임자로서의 고충(?)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현장의 사정일 뿐이다.
고정항 1번 부두에서 배를 떼어내어 항로의 마지막 입구인 1번 2번 부표 사이를 빠져 나갈 때 까지는 순조를 타고 나가도 두 시간이 소요되며 도착 할 19시쯤은 이미 어둠에 잠길 테니 입항할 때 보았던 1번 2번 부표 가까이에 흩어져 있던 어망 부표를 볼 수가 없어 사고를 포함한 조선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데에 출항을 결정해야 하는 나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배를 떼어만 내어, 검역묘지에 투묘한 후 하룻밤을 지내고 밝은 아침에 떠나려고 검토하니 그 것도 사리 때의 강한 물살을 뒤로 받으며 이 큰 배를 투묘한다는 것도 어려운데 더하여 그 곳에는 이미 다른 배가 한척 투묘하고 있어 더욱 좁아진 셈이다.
마지막 검토로 배도 없고 어망도 없는 A묘지에 투묘하자니 그곳은 닻밭이 안 좋아 닻이 끌릴 위험이 크고~, 그런 저런 이유로 배를 떼면 그대로 출항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도선사의 말도 일리를 더해 주면서 내 결단의 맘을 계속 뒤척이게 했던 것이다.
본선의 하루 용선비가 16,000달러이니 요즘 같은 달러화의 강세 속에서는 출항을 못 하면 2천 7백만 원의 돈이 그냥 날라 가는 형상이니 어지간하면 출항하여 그 돈을 세이브하고 아울러 예인선 대기비와 도선사의 대기 비용 까지도 줄일 수 있다며 담당 영업 부서에서는 출항해 줄 것을 은근히 종용한다.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선단에는 자신이 협조하여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순간적으론 그 말에 화도 치솟아 올랐지만 그렇다고 화만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니, 에잇 나가지 하는 오기를 발동시켜 <그래 출항 한다.>로 결단을 내려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즉시 행동에 옮겨 아직 양하 작업이 안 끝난 상황이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터그보트의 줄을 잡게 하고 출항 차비를 서둘러 준비하도록 지휘를 시작하였다.
2천 7백만 원 세이브를 목표로 한 출항은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고 깜깜한 밤이 찾아와 버린 19시에 무사히 항로를 빠져나온 것이다.
항로의 입구인 1번 2번 등부표를 통과하며 작은 섬광을 밝혀내는 어망부표의 군집을 오른 쪽 뒤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흘려보내며 본격적인 침로로 정침 했다.
비슷한 일들을 겪게 되면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큰일을 무사히 끝낸 다음의 기분 좋은 성취감은 만끽 하지만, 휴우~ 가만한 한숨을 거두면서 브리지를 떠나 방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