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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 신청자

한솥밥 먹는 동료를 보내고 구하는 일

by 전희태


BD12(7935)1.jpg 뉴캐슬 시청 뒤쪽의 작은 공원에 있는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을 알리는 조형물. 이곳 출신으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올려진 것도 있다.


연가 신청은 통상 연가 발생 시점에서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앞선 시점을 가지고 미리 신청하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선원의 특수성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로 연가 예정이 어그러질 수도 있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요모조모를 따져서 배치하려는 때문에 그런 관례가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뉴캐슬에서 짐을 실은 후, 귀항 목표가 되는 포항에 도착했을 때, 연가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되어, 배를 내리겠다고 연가 신청한 사람이 오늘 조사에서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항해사이다. 내 입장으로는 최소한 두 사람 중 한 사람-특히 일항사-은 연가 신청을 보류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선장인 나를 보좌하는 태도나 행동 모두가 마음에 들게 일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에 있을 내부 감사를 이야기하며 될수록 그 행사에서 빠지고 싶은-일만 많은 귀찮은 행사이니- 의도를 보이는 그 친구의 언사를 들으며 내 속마음에서는 작은 배반감으로 받아들이는 이기심이 발동한다.

지금껏 잘 대해 주며 지냈는데 그럴 수가 있어? 하는 식의 섭섭한 마음이 든다는 뜻이다.


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속 좁은 욕심이 이끌어 내는 마음이고, 공평한 눈의 제삼자 입장으로 본다면, 그도 좀은 편하게 승선 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것이기에, 나도 두 말 안 하고 연가 신청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바꾼 마음으로 연가 신청자를, 그가 포함된 두 사람을 함께 거론하여 회사에 통보해 준 것이다.

곁들여서 기왕에 그들 두 사람이 모두 내릴 것에 대비하여 계속 승선으로 본선에 남아 있는 삼항사에 대해서는 본선 진급 신청을 덧 붙여 보기로 한다.


3 항사가 이미 회사로부터 승진할 기간이 도래한 상태로 인정이 된다면, 기꺼이 본선 진급을 시켜서, 내리는 2 항사와 교대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봐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의 말을 써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혹시 가능하다면 삼항사의 자리는 항통사(주*1)로 메워 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입 속에 담아 두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보고서를 통신 요금이 싼 시간인 밤 10시가 넘어서 보내려고 기다려서 E-MAIL을 여니 금세 한 번에 수월하게 연결이 되어 초짜 통신사 업무를 하고 있는 내 마음을 수월케 해주고 있다.

마침 수신하게 되는 공문도 하나가 들어 있다.


새로 해사 상무가 된 P 상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복무지침을 언급하며 보낸 공문이었다.

겨울철 및 구정 연휴에 당직을 잘 서 주도록 부탁하는 내용의 글도 있으며, 현재 부산 지역에 눈이 오고 추운 상태를 이야기하며 타사 선박(탱커로 짐작이 되는)의 폭발 침몰로 인한 해상오염 사고를 언급하고 있다.


엊그제까지도 추위에 오들 거리든 우리였지만 이제는 더워서 땀마저 흘리고 있는 힘든 상황이니, 그런 추운 상태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조심해야 할 사항이 승조원들의 귀에 들어올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돌아가는 항해에서는 다시 추운 곳의 항해로 이어지니 앞으로 한 달 가까이 남은 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때의 조심을 위해 공문을 회람시킬 준비를 한다.


한 달 정도 뒤, 국내에 입항하는 때에도 다시 한번 그 공문을 들춰내어 모두의 마음에 조심하는 준비를 시켜야 하겠다는 예정을 메모장에 적어 넣어놓았다.


주*1 항통사 : 지금까지 통신사(대부분이 통신장으로 직급이 올라가 일 항, 기사 급사관이지만)로서 근무하던 사람들 중 전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항해사 면허를 취득하게 한 후 항해사로서 전직시키고 있는데, 본선 선장으로 그런 사람을 원하는 심정은 항해사로서의 기초는 모자랄지 모르나, 다른 분야에서는 지금껏 승선한 사람들이라 경험도 많고 풍부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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