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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

해상에서의 엄격한 쓰레기 분리수거

by 전희태


_3260926.JPG 육상에서 만날 수 있는 쓰레기 투기 모습


평소 아침 식사를 하지 않던 기관장이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다. 새벽에 기관에 이상이 생겼는지 RPM이 좀 떨어지며 약간의 소리도 났는데, 아마 그때 기관실로 내려가서 수리작업을 하고 난 후, 다섯 시에 내가 운동하려고 방을 나설 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는 모습과 마주쳤었다.


그때부터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하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새벽 운동을, 끝내고 7시에 맞춰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내려갔을 때 이미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장 님은 새벽 다섯 시부터 운동을 하십니까?

-그럼요.

-그때부터 갑판에 나가시는 거예요?

새벽이 너무 어두울 때는 바깥이 좀 밝아 지기를 기다려 실내에서 운동을 하다가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설명을 하려면 말이 길어지니 그냥,

-그렇지요 뭐,

하고 받아넘긴다.

아무래도 먼저 식탁에 앉았던 그가 먼저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뜬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하고 그가 자리를 뜬 후에도 나는 천천히 식사를 끝낸 후, 그릇과 식판을 들고 잔반(殘飯) 통에 남은 잔반을 버리려고 주방으로 갔다.


먼저 버려진 잔반통 안에는 엊저녁 먹고 남았던 새하얀 이팝이 소복이 버려져 있는데 그 위로 비어진 두유 팩 한 개가 팽개쳐져 있다.

내용물을 모두 빨아 마시느라 사용한 플라스틱 빨대조차 그대로 꽂힌 채 구겨서 버려진 그 두유 팩을 보는 순간,

-누가 이런 몰상식한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하는 어쩔 수 없는 노여움 같은 짜증이 울컥하니 솟구친다. 그 모양의 두유 팩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분류하여 따로 모았다가 육상으로 내려 줘야 하는 쓰레기인 것이다.


두유 팩은 대부분이 종이로 되어 있지만 팩의 안쪽에 비닐 성 코팅이 부착되어 있고 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빨대까지 꽂혀 있으니 완전히 <비닐/플라스틱> 쓰레기로 분류되므로, 음식물 찌꺼기만 버려야 하는 잔반통에 섞이게 해서는 결코 안 되는, 특별 관리 쓰레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태연히 버린 사람이 있다니 하는 마음에 노여웠던 것인데, 이제 누가 그런 일을 했다는 말인가 하는 범인 찾기에 나섰다가 그가 누구일 거라는 걸 짐작하게 되면서 더욱더 화가 치미는 것이다.


방금 나보다 먼저 자리를 떠서 사관 식당에서 식사 후 버리는 잔반통을 찾았던 기관장이 바로 그 행위자라는 사실이 모든 정황을 살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지만, 그가 방금 두유를 마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긴가민가하는 심정이었다.


개수대 안에도 기관장이 식사하고 넣어준 그릇과 기관장의 수저(개인 것으로 다른 수저와 다름)만이 들어 있었고 그다음에 내가 그곳을 찾은 셈이니 나 아니면 그 밖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먼저 떠오르기는 했다.


배에서 기관장이면 회사로부터 선내 오염방지인(汚染防止人)으로 지명되어 선내 전반에 걸친 오염 방지에 관한 교육 훈련을 하며 환경보호를 위해 왜 이런 복잡한(?) 쓰레기 취급이 필요한가를 타 승조원에게 널리 알리고 교육하며 솔선수범을 해야 할 바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본이 되는 쓰레기 분리수거도 모르고-아니 등한히 하고 있는 거 겠지만-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啞然失色) 하니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는 심정이 들게 되는 것이니, 설마 기관장이 그랬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고개를 들고 나선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내가 직접 그에게 이야기를 해서 고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척하고 넘기고 말 것인가? 그러나 그런 마음을 모두 접으며 참기로 한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오전 중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 계속 나대로 다시 조사해 보면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람은 기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는, 아니 그런 경우가 더 크다는 결론을 얻어 내고서야 마음을 조금 가라 앉혔다.


때때로 한 밤중의 항해 당직자들이 당직을 끝내고 출출한 공복감을 때우려고 식당을 찾는 경우가 많기에, 그 들 중 누군가 간단한 요기거리로 두유를 마시고 그냥 버렸을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렇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안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전 승조원을 상대로 쓰레기 취급에 대한 재교육의 실시를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 분리수거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가장 중요한 예로, 두유나 우유팩 등 얼른 보면 종이 쓰레기 취급하기 쉬운 일회용 팩이 실은 플라스틱 빨대를 꽂은 채 버려지면, 플라스틱 쓰레기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한번 짚고 넘기기를 작정해보는 것이다.


쓰레기가 두 종류 이상의 물질이 섞인 복합된 경우에는, 그중 좀 더 엄격한 취급을 해야 하는 쪽의 쓰레기로 취급해줘야 하는 것이 쓰레기 분리수거의 기본 원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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