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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의 우리 배 비난을 들으니

진실이 기분 나쁜 심정

by 전희태


JJS_3020.JPG 외국항에서 상륙을 위해 통차를 타고 드나들어야 하는 어느 구역.


저녁 열 시 마지막 통차를 타고 배로 들어가는 차 안이다. 열 시가 되자마자 떠나려는 통차 기사에게, 다른 배의 승조원도 타고 있기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우리 배의 승조원을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이다.

10 시가 되자마자 칼날같이 떠나는 그에게 상륙한 우리 배의 승조원 중 아직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를 묻기만 했다.

-예, 중국 선원 둘, 실항사, 이항사, 조기장 다섯 명이 아직 안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요?

놀란 생각에 잠겨있는데 같이 들어가려고 승차해있던 2 기사가 아딘가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여보세요?, 어 실항사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누구누구 하고 같이 있는 거야?

-지금 출발하여 선원 휴게소 앞을 지나고 있는데,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으면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들은 지금 마지막 통차라고 지정된 통차 시각까지 시내에 머무르고 있어 귀선 시간을 넘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좀 세워 기다렸으면 했는데...

통차 기사에게 들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하는데,

-아직도 출발지에 오지 않았잖아요?

하더니 한술 더 떠서,

-사실 이 배만큼 통차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배도 없는 것 같아요,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우리 배는 기합이 빠진 배란 말인가? 하는 섭섭한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어서며 열 받치게 한다. 통차 기사는 우리 배의 승조원들이 통차 시간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있는 실정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며 풀이해 주니 사실 할 말도 없다.


나는 시간관념만큼은 틀림없이 지켜야 하는 걸로 교육받으며 학교 생활을 하였던 세대이다.

예를 들어 집합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진행함에 있어 30분 전, 15분 전, 5분 전을 알려가며 집합을 시행했는데, 여기서 5분 전 상태는 이미 집합하여 집합 점검을 받을 준비가 다되어 있는 상태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항상 미리 준비하며 시간을 규모 있게 쓰도록 거의 강제적인 교육을 실시한 의도는 선상생활에서 약속한 시간이란 꼭 지켜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기숙사 생활은, 선상생활로 비유되며, 과실(過失)로 인해 받게되는과실점의 합으로 컨트롤되었다. 즉 허용 과실 점을 넘어서면 퇴학이란 가혹한 처벌을 받는 불이익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런 과실 점 부여의 항목에 학생들이 상륙하였다가 불가피한 이유 없이 귀교 시간을 넘기게 되면, 승지(乘遲)라 하였고, 최대 과실 점을 받는 일 중 하나였다.

이른바 배에 승선할 지시된 시간을 어기었다는 뜻인데, 퇴학조치도 뒤따르는 가장 큰 잘못으로 취급되는 엄한 일이 바로 승지였다.


오늘 밤 10시 통차가 마지막 통차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기에, 상륙한 사람들이 그 시한을 지키지 않고 승지 상태로 있다는 것은, 내가 받았던 교육과 요즘의 신세대 후배들이 받는 교육의 패턴이 달라져서 승지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서일까?

잠깐 세상의 달라짐에 한눈을 팔듯 생각에 잠기는 것은, 타인이 우리 배를 두고 왈가왈부하며 비평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이제 열 시가 넘었으니 통차도 더 이상 낼 수가 없습니다.

통차 기사는 마지막까지 물고 넘어지듯 약 올리는 소리를 한다.

그렇게 통차 기사는 오늘은 통차를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닫는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래도 태워다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니 그는 자신의 입장으론 어쩔 수 없다고 버티듯이 이야기를 덧붙인다.

-잘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 기분도 매우 나빠지는군요.

타인에게서 우리의 아픈 점을 찔려 듣는 느낌에 화가 난 내 심정을 걸러내지 않은 그대로 토로하며 통차를 떠나 배로 올라온다.

어느새 통차는 배 옆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현문을 들어서며 당직 중에 있는 3 항사를 보면서,

-통차 기사가 지금 들어온 통차가 마지막이라며, 오늘은 더 이상 서비스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걸어오던 뛰어오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놓치지 말고 배로 들어오라고 이야기해줘라.

당직 중인 애매한 3 항사에게 화풀이하듯 지시한다.

-그리고 걔네들이 들어오는 대로 나한테 연락을 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덧 붙이며 방으로 올라왔다.

열 한시 삼십 분쯤에 방의 전화벨이 울려 WOLF라는 주말영화를 보고 있던 자세에서 수화기를 집어 든다.

-3 항사입니다. 지금 상륙자 모두가 들어왔습니다.

-무얼 타고 들어왔어?

-예, 통차 타고 왔습니다.

-옆에 이항사 있어?

-예, 그렇습니다.

-그럼 바꿔 줘,

-전화 바꿨습니다. 2 항사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죄송합니다.

-다 들어오긴 했어?

-예, 드릴 말씀도 없고, 면목도 없이 죄송할 뿐입니다.

-알았어, 통차 타고 들어왔다면 자네가 통차비를 지불한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자신의 잘못을 빌어온다.

-그래 알았어, 이제 쉬고 아침에 봐.

-예,

전화를 끊고 보니 이미 잠은 달아나서 내일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예정이 버겁게 느껴지지만 보던 영화를 마저 보고 잠을 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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