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의 여행
어젯밤에 잠을 설치며 전쟁같이 치러 낸 터그보트 사용으로 배의 제멋대로였을 뻔 한 이안(사고)을 무사히 방지해 내었다. 약간의 피로감은 들지만 마음만은 그럴 수없이 가볍다.
아침이 되어 창밖을 보니 너무나 화창한 날씨가 그냥 배안에 머무르며 소일하기에는 억울한 느낌이 들어 무조건 밖으로 나가기로 작정을 한다.
점심식사를 들고난 후 마침 부족했던 주부식의 몇 가지 빠졌던 물품을 납품하려고 나타난 선식의 차를 이용하여 상륙하기로 했다.
아내와 둘이서 그렇게 빠져나온 배를 뒤로하고, 역을 향해 택시를 타고 가서 내일 아침의 차표를 좀 더 좋은 자리로 바꾸려고 해봤지만, 더 이상의 표가 없이 매진되었단다.
-자리가 있었으면 그 자리를 드렸겠습니까?
라는 말을 들으며 차표 바꾸기를 포기하고 나온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해방된 마음으로 너무나 밝고 환한 푸르디푸른 하늘을 본다.
-어디로 갈까?
-글쎄, 아는 데가 있어야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 볼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즉석에서 생각해낸 방법대로 행하기로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영덕으로 가는 길을 표시한 교통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영덕으로 가봅시다.
하며 버스터미널을 표시한 쪽을 향해 만보기의 착용을 아내에게 보이며 운동 삼아 걸음을 걸어보자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버스 정거장으로 몇 구역 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좀 지루한 마음이 든다.
-영덕에 갔다가 마지막 차라도 놓치면 큰 일이니까, 우리가 아는 구룡포로 가는 게 어때?
하며 행선지를 수정하자고 제의를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던가...
아내의 무덤덤한 반응에 그렇게 바꾸기로 하고 구룡포행 시내버스가 서는 정거장에 서서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서 서있던 승객에게 물었다.
-구룡포로 가려면 여기서 타는 것 맞지요?
하니 우리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저쪽 건너편 정거장에서 타야 해요.
한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깍듯이 하고 길을 건너 반대편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윽고 나타난 200번 좌석 버스는 우리를 1,350원짜리 두 손님으로 반갑게 맞이하며 실어준다.
버스는 시내를 한 바퀴 돌 듯 돌아서 배에서 나왔던 길로 다시 들어서더니 구룡포를 찾아 구불거리는 옛 도로와 새로 만들어 놓은 다리가 많은 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면서 달린다.
오천 보를 넘게 걸었던 아내는 다리의 피로가 가셔지는지, 다음번에도 이런 방법으로 다녀 보자고 소곤거리듯 제안을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종점에서 내린 후 영덕 대게를 팔고 있는 어시장도 기웃거려 보다가 구룡포 항을 벗어나 호미곶 등대(장기갑 등대) 쪽을 향한 길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바닷가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서 모래사장을 거닐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의 싸늘한 대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은 따개비와 조가비의 하얗게 바랜 모습이 자신을 주워서 기념품으로 삼아 달라는 유혹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 유혹을 이겨 낼 수가 없었던지 아내는 허리를 굽히며 조가비 껍질을 줍기 시작한다.
마침 버려진 쓸 만한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가 눈에 띄어, 거기에 담기 시작한 따개비가 어느새 한 바구니 다 차니 아내는 그걸 가져다가 뜨거운 물에 담가서 깨끗이 우려낸 후 빈 커피병에 넣어주면 제법 예쁘겠다고 하며 구룡포에서 추억 만들기를 그렇게 하잔다.
바닷가의 추억을 키워내려고 두 시간 이상 조가비를 주워가며 만들다 보니, 어느새 슬슬 시장기가 찾아오는 저녁때가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주워들은 조개껍질을 잘 싸서 챙기며 돌아오는 길로 들어서서 걷다가 방파제에서 멸치 말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선다.
아내는 말리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마른 멸치 한 마리를 주워서 맛을 보더니 멸치의 달착지근하고 순수한 맛이 그만이라고 속삭인다.
그 맛에 홀린 듯 말리는 멍석 위에서 한 마리를 들어내어 나에게 맛을 보게 하며 파는 것이 있으면 사가자고 이야기한다.
-이거 팔기도 해요?
아내는 말릴 새도 없이 일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묻는다.
-예, 팔기도 합니더.
이 지역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대답이 구수하다.
-값은 얼마나 돼요?
-2 킬로그램에 2만 5천 원 합니더.
-근수를 잘 쳐서 주세요.
평소 흥정이라면 깎기(?)부터 먼저 하던 아내가 군 말없이 사겠다며 나서는 걸 오히려 이상한 광경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저울에 올려지는 멸치를 본다.
2킬로 900그램까지의 눈금에 도달하도록 수북이 담아준 멸치 박스를 받아 들며, 값을 치르기 위해 지갑을 꺼내지만, 그렇게나 가볍고 기분 좋을 수가 없음은 그 흥정과 판매 과정에 인정이 흥건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받아 든 멸치 중에 학꽁치 두 마리가 들어 있다. 배 위에서 삶아낼 때 같이 휩쓸려서 삶아져 버린 녀석들이다.
들어내어 주욱 찢어 질겅질겅 씹으니 별로 비린내도 없이 달착지근한 맛이 오징어는 저리 가라 끝내주는 맛을 선물한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구룡포 포구로 다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고 식당 간판들을 기웃거리다가, 복어 요리를 주로 하는 식당 앞에 섰다. 허름하지만 이름이 있는 식당이라고 언젠가 이 지역 출신의 기관장이 이야기하던 기억을 생각해내며 서슴없이 문을 밀치어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