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 이별을 위해 새마을 열차를 타고

이별을 되풀이하며 사는 삶

by 전희태


20100919-집마당 024.jpg 혼인색으로 변한 고추잠자리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간에 헤어지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는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 되어 버리는 무심함 속으로 팽개쳐지는 생활 속에서, 어찌어찌되어 고국의 항구로 다시 입항할 양이면 그 날을 바로 재회의 기쁜 날로 만들어, 만사를 제쳐두고 서로를 만나야 하는 숙명을 지닌 뱃사람-선원-의 아낙네 중에 아내도 포함되어 있다.


벌써 며칠째 신혼 기분 같았던 포항에서의 나날을 마무리하고, 다시 바닷길로 나서야 하는 남편과 헤어져 집으로 가야 할 때를 맞이 한 아내이다.

자신의 관심을 남편에게서 떼어낸 후, 집에서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돌려주려, 아내는 구룡포 데이트 중에 구입한 멸치 포대를 단단히 포장한 짐까지 보태어서, 내려올 때 보다도 더 늘어난 짐 보따리를 들고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지점에서 편리를 봐준 승용차편으로 포항역에 나가려고 서두르는 아내의 표정은 어제까지 근심 걱정 없던 해맑은 지어미에서 어느새 이별이 서러운 아낙네로 변해 있다.

그렇듯이 아내가 보는 나 역시 별리의 안타까움에 발이라도 동동 구르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표정에 대한 이야기는 못 본 척 안 하고 있다. 말함과 동시에 서러움이 폭발할까 봐 두려운 때문일 거다.

서러운 기류에 휩싸인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시간은 누구 편에도 관여치 않은 채 저 혼자 잘도 흘러간다. 헤어질 순간들은 매번 그렇게 찾아오곤 하는 것이다.


포항에서 서울까지의 교통수단에는 고속버스와 비행기도 있지만, 안전을 제일 먼저 생각하며 여러 가지 면을 비교했을 때, 열차 편을 이용했을 때가 제일 편안한 마음을 남겨준다.

그런 열차가 포항/서울 간에는 하루에 두 번, 아침 7시 50분과 오후 4시에 새마을 열차로 있다.


지난 항차 아내가 내려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도 그 열차 중 아침에 떠나는 차편을 이용했었는데 이번에도 출항시간이 비슷하여 그 열차를 이용하여 귀가하기로 했다.

지점의 김 과장에게 차표를 부탁하여 구한 표가 지난번에는 13번 객차의 3번과 4번이었고 이번에는 14호 객차의 1번과 2번이다.

지난번에는 마침 주말이었으며 비행기도 안 뜨고 날씨도 아주 나빴기에 그렇게 표를 구하는 게 무슨 특권이라도 지닌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막상 그 표로 승차한 후 서울 갈 때까지의 과정에서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화장실 냄새가 들어와서 곤욕을 치렀다며, 이번의 표를 받아 보고도 같은 문 앞의 장소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월요일 차표이니 괜찮지 않을까 기대하고 어제는 일부러 역에까지 나가서 그 표를 좀 나은 자리로 바꿔보려고 시도도 했지만 일등칸마저 매진된 상태여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표가 있었으면 그렇게 드렸겠습니까?

라는 말만 듣고 돌아서 나와야 했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는 열차 중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고 타야 하는 최고급의 기차라는 새마을 열차를 탔는데, 지린내를 강제로 맡으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을게다.


열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배에서 아내를 떠나보내면서도 그 점이 가장 맘에 걸리는 대목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으니 모른 채하며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는 그 이야기는 묻지 않고 있다가 집에 도착 후 전화가 왔을 때 물었다.


-문을 등에 진 상태로 의자가 놓여 있어서 괜찮았어요.

라는 대답을 들으며, 아하, 그런 수도 있구나 싶어,

-그럼, 앞 의자 사람과 마주 보며 갔겠네요? 하니

-아니 처음부터 의자의 놓임 새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안 그랬어요.

한다.

아마도 지난번 열차와는 좌석 번호의 배열이 앞뒤가 완전히 반대로 붙여졌던 모양이다.

이번 아내가 탄 14호 차에서는 마지막 네 개의 좌석 번호를 가진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고역을 치르는 자리를 차고 있었을 것이다.

저녁 무렵. 예정대로 우리 배도 포항을 떠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타인들의 우리 배 비난을 들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