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 통항권을 행사하며
포항을 떠나 우리나라 영해를 벗어난 후
머나먼 호주까지의 항로를 찾아가는
가야 할 길 중간에서 만나는 첫 외국
일본 규슈 남단의 섬 사이를 빠져나간다.
당분간은 육지 모습을 떠나야 하는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 무렵이다.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 한 척이 기다리듯이
순시하는 모습으로 우리 배 앞쪽에 머무르고 있다.
헬리콥터도 띄우고 자신이 왔다 갔다 하며
기동성이 있는 훈련까지 하는 모습이지만,
어쨌거나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선장이라 그런 건지...
내가 보기에는 마치 우리 배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느라고
그렇게 움직거리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있다.
출항 후 황천 준비를 차근차근 해가는 과정에서
약간 비어있는 발라스트 탱크를 채워 넣으려던
해수의 선적 작업 예정도 일단은 중지시킨다.
넓은 바다에서 발라스트 탱크를 채우는 일은
마음 놓고 하는 일이기에
탱크가 차서 흘러 넘침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
그러나 그럴 때 흘러 넘 칠 발라스트로 인해
선외로 흩날릴 물안개가 남의 이목에
필요 이상의 경각심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기관실에 연락하여 배 밖으로 배출되는
모든 펌프의 사용을 통제하도록 지시한다.
이 근처에서 이틀 정도 거리를 더 가면
오키나와 부근이 되는 데, 몇 년 전에
어떤 배가 빌지 배출의 혐의를 받게 되어
강제로 오키나와 쪽으로 회항당하였다는
낡은 이야기를 기억해내며
조심하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다.
은근슬쩍 흔들리는 배의 요동에 따라
한 번씩 발라스트 탱크에서 빈자리 메우려는
해수의 이동이 작은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당분간 이들의 시야 밖으로 빠지기 전까지는
그냥 모른 채하며 항해하기로 한 것이다.
죄짓거나 잘못한 일은 결코 없지만 그래도
지나침이 어딘가 껄끄러운 저들을 쳐다보면서
예전에는 나도 대한민국 해군 장교였음을 상기하는
내 마음은 자신 있는 미소를 띠며 지나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