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세상살이의 한 방편인가?
포항을 출항하던 날.
우리 배에 승선하려던 한 중국 선원
본선에 승선하려 나타나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써서 서명해주며
출항 수속을 끝내고 떠났었다.
그 서류 한 장으로서,
그 친구는 밀항자요,
도망자로 낙인찍혔고
잡히면 강제 출국당하는
신세의 전락자가 된 것이다.
아울러 그가 선원으로 승선하려고
만들었던 제반 보증 서류에 날인을 해 준
고향의 친인척들은 그의 이탈에 대한 책임만을 받아 안아
크게는 집까지도 빼앗기는 패가망신을 당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망자가 된 그 중국 선원이
본선에 교대하러 올 것이란
예정이 처음 알려졌을 무렵
역시 중국 동포로서 우리 배 갑판수였던
리군은 비싼 돈을 들이어
자신의 집에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약을 그 교대자를 인편 삼아
자신에게 부쳐 달라고 연락했었다.
교대자가 오기를 학수고대 하던 중, 날씨가 나빠져
비행기가 하루 늦어진 것도 안달이 나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도망쳐 버렸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어쩔 도리 없이 약만 날린 꼴이 되었다.
한 달 봉급이 넘는 액수의 돈을 지불하며
사서 부치게 한 약으로서 돈도 돈이지만
그의 지금 건강의 상황으로선
아쉬운 꼭 필요한 약이었기에
안타깝고 괘씸한 마음이 교차해가며
그를 허탈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나중 연가로 집에 갔을 때,
-그 친구네한테 물리면 되지 않아?
하고 말을 걸어 보았더니,
-이제 집도 돈도 모두 넘어가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요. 한다.
-약 만이라도 전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마냥 입맛만 다시면서.
아쉬움을 못내 감추지 못하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딱 한 리군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니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수 없구나.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간 녀석이 잡히어
그 약이나마 무사히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할 뿐이다.
현재 우리 배에 타고 있는 네 사람의 중국 선원들은,
그렇게 도망가게 되면 남아 있는 가족이나
연대 보증을 선 친인척들이 변상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몰수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도망 칠 생각은 안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그는 도망을 갔을까?
하기야 도망간 친구의 고모가 서울에 살고 있고
그가 도망간 후 중국에서 그 고모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와서
통화한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정보도 나오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 고모의 단순함이
그런 일을 범죄인 줄 모르고 저지르게 한 사연은 아닐까?
좋게 생각해 주고 싶은 내 마음은 그렇게 유추해본다.
늦은 시각에
추적추적 비도 오고 날씨조차 을씨년스러운데
멀리 이국 땅에 살고 있는 조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바로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고 하니
고모 집에 왔다가 가라는 말을 예의상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잠깐이야 들렸다가도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조카를 집에 오라고 했는데
그것이 결국 그를 돌아올 수 없는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게 만드는 일로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짐작을 그 행동 방식과 과정을 추측하여
그가 도망가던 날에 대입하면서
짐작해 보는 내 생각이지만
실제 내용이 어떤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사람의 중국 교포 젊은이가
우리네와 악연의 끈에 묶이는
불행에 빠져들지를 않고
성공해서 돌아가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