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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시겠지만...

지레짐작

by 전희태
SNB10040.JPG


다시 국내로 귀항할 날짜가 앞으로 한 달 정도 남겨졌다는 날짜 계산이 나왔다. 우리나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날이 그만큼 기끼워졌다는 이야기이다.


회사의 선원 인사관리를 위해 그 정도의 기간을 두면 각선에서는 연가자들을 파악하여 회사에 보고하는 통례를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연가 신청자를 미리 통보해 주려고 명단을 조사 보고하도록 일항, 기사에게 점심식사 시간에 미리 귀띔을 해두었다.


저녁 식사 식탁에서 일기사는 자신이 조사한 기관부측 연가자 사항을 기관장에게 보고한 후, 최종적으로 그 쪽지를 나에게 알리려고 전달해 준다.

기관부 연가 신청자는 두 사람으로 일기사 자신과 기관수 한 사람이었다. 식사를 끝내며 그 명단을 거두어 방으로 오려는데 기관장이 말을 걸어온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번 돌아가면 사명으로 연가를 받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숨 돌리어

-후임자는 P 기관장이랍니다.

라는 말까지 하고 끝낸다. 먼저 이 배를 타고 있었던 기관장이 다시 탄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기관장님은 어느 배로 배정되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우울한 대답이 돌아오며 말이 끊겼다.


지난번 포항을 출항하던 날 기관장의 부인과 같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아내가 저녁 무렵 전화 통화를 할 때, 지나가는 말로 기관장이 내리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기 부인에게 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나에게 전달된 이야기는 없었기에 긴가민가하고 있던 차에 당사자의 입을 통해 그런 소식을 접하니 소문이 맞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전제로,

-알고 계시겠지만, 이라고 단서의 말을 붙여준 후, 본론의 이야기는 단숨에 내뱉듯이 하는 것으로 느껴지니, 그 말의 뒤편을 받아들이는 내 기분은 솔직히 불편한 심기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고도 시치미 떼고 있는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힐난하는 듯 한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보아 온 그의 성품이 남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인물은 더욱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 태도가 은연중 그를 좀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하는 식으로 지나치긴 했겠지만, 회사의 그 누구와도 그런 일로 그를 비난하거나 헐뜯는 험구 성 이야기를 한 적은 결코 없으므로, 그런 식으로 삐딱하게 들리는 말이, 그 또한 그의 성품 때문이긴 하겠지만, 좀 거슬리게 들린 것이다.


요사이 기분이 저조해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이던 그의 배 안에서의 생활이, 그런 이유로 인해 그랬었던 것이구나! 하는 짐작했던 마음에 안 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내가 알고도 모른척하고 시치미 떼고 있었다는 듯이 봤다는 것은, 어쩌면 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나 불편한 심기가 매우 컸던 모양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는 기관장을 눈으로 바래 주며,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일기사의,

-선장님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계셨군요?

하는 말을 들으며 얼굴을 들어 일기사를 쳐다본다.

-그래 이번 항차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여러 가지가 생기네!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진짜로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눈치나 짐작으론 인지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일이 맞으니, 결국 모르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대답이긴 하지만... 인간사 감정의 묘한 흐름은 이렇듯이 우리들 사이를 누비어 괜스레 어려운 구석을 지니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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