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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ul 18. 2017

노후선에서 종종 있는 이야기

배도 낡았고, 서류 정리도 그에 비례하여 어수선하니 흩어져 있으니...


 후-후- 하고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소리가 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선내에 알립니다. 선내에 알립니다. 방금 울린 파이어 알람은 기관실 열 작업으로 인한 오작동이 오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3 항사의 알림 방송이 울려 나온다.


 이런 방송을 하도록 만든 원인이 되었던 파이어 알람이 울린 지 벌써 5분이 넘어가고 있는데 나온 방송이다. 

경보가 울린 즉시 방송을 하려고 선내 퍼블릭 어드레서를 작동시켰으나, 성능이 별로 좋지 않은 고장 비슷한 상태에 있기 때문인지, 마이크를 잡은 후 혀를 차서 소리도 내어보고 마이크를 두드려도 보는 승강이를 한참이나 들려주고 나온 방송이었다. 적시를 놓치고 일이 벌어진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온 것이다. 


 그렇게 늦어진 시간은 진짜 불이라도 났다면 벌써 도망가야 할 정도로 불이 확산돼 버린 상태를 만들 만큼 긴 시간이다. 이런 식으로 불확실한 상태로 사용되고 있는 선내 기계들이 제법 있기에 언젠가 한 번은 또 법석을 떨어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불안감을 항시 갖고 근무하고 있다. 


 새로운 국제적인 룰이나 규정에 대처하기 위해 요 근래 부착시킨 계기들은 빼고 원래 신조 때부터 있던 물건들은 거의 전부가 노후화되어 성능이 떨어지거나 고장이 잦은 상황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발전기에서 커다란 결함 개소를 발견하고도 부속이 없어 갈아 끼우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부속품은 법정 비품(주*1)으로 항상 예비품을 갖고 다녀야 하는 것인데, 예비품을 언제 사용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바꿔준 물건은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그 후 다시 새것으로 수급하여 채워준 사항까지도 모두 기록에는 없다.


 열심히 찾아보다가 마지막으로 혹시 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이미 다른 배의 일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당시 이 기사로 승선 중이었던 기관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바꿔 넣으며 빼낸 중고품의 행방을 물어보는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연락이 닿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대답으로, 서대서양에서 항해 중인 자신의 배의 새벽 3시일 때에 연락을 해온 우리 배 기관사들의 물음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기대를 무너뜨리는 대답을 해주었 던 것이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그런 전화라도 걸었겠지만, 사실 처음부터 알아낼 가능성은 별로 없는 조치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는 심정과 다를 바 없어 뵈는 기관부 사람들의 고민을 보며, 나 역시 같은 심정이니, 통신요금이 제일 비싼 선박 대 선박의 전화이지만 그냥 하도록 묵인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회사에 연락하여 그 예비품을 빨리 구해주도록 청해야 할 단계만이 남은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동안만이라도 제발 그 부속품의 필요가 연루된 고장 상황은 발생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만이 간절할 뿐이다. 


주*1 법정 비품 : 선박이 운항 중에 고장이나 멸실 등을 당했어도, 자체적인 복구로 운항에 복귀할 수 있도록, 예비품을 가지고 다니도록 법으로 정한 비품을 말하며, 신조 후 폐선 때까지 사용 안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신조 때부터 꼭 가지고 다니도록 법으로 강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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