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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ul 19. 2017

결국 회사의 뜻대로 되겠지만

명퇴를 준비하는 마음.


 텔렉스가 삐삐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내일 1530시에 도선사 승선하여 접안을 시작할 거라는 전문을 보내주고 있다. 그래도 늦어졌던 예정보다 다시 하루를 당기니 다행이란 마음이 들어 전문을 오려 내 들고 브리지로 올라간다. 

 이제 접안해 들어갈 준비 사항들을 체크하고 있는데, 이번엔 벨 소리가 유난히 길게 들리는 위성 전화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위성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크고 길게 들리는 것 같다고 느낌은, 요 근래 그 전화가 별로 오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더하여 제일 먼저 떠 오르는 명퇴에 대한 그 후의 소식이 궁금한 때문인 것도 같다. 

그래도 초조한 마음을 남에게 엿보이기 싫어 우선은 당직사관에게 먼저 내려가서 받아 보라고 지시한다. 당직사관은 부리나케 통신실로 뛰어 내려간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부러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나도 뒤따라 통신실로 향한다. 


 방금 전화를 받은 3 항사가 상대를 확인하는 말들을 주고받던 중, 통신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선장님이 계십니다. 바꿔드리겠습니다. 

하며 나에게 수화기를 넘겨준다. 

-누구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구냐고 3 항사에게 반문하며 수화기를 받는다. 

-예, 선단장님이 걸어오신 건 데요, 기관장님을 찾으세요. 

대답하며 3 항사는 통신실을 떠나려 한다. 

-그래?, 그럼 3 항사! 기관장한테 빨리 연락하도록 해라. 그동안 내가 통화하고 있지. 하며 수화기에 대고,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선장입니다. 

 하고 통화를 시작한다.


-예, 선장님, 선단장 P부장입니다. 선장님 건강은 좋으시지요? 날씨는 어떻습니까? 

우리 배가 속한 선단의 장인 박 부장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날씨를 묻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우리 배가 항해 중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 그럼 좋지요. 내일 접안한다고 방금 연락이 와서 준비 중이었어요. 


선단장이긴 해도 10 년이 넘는 후배이고, 또 예전에 같이 타던 안면도 있어 그냥 편하게 말하기로 한다. 

-그런데 요새 회사는 어때? 

제일 궁금한 사항인 정년 단축의 건을 물어본 것인데 역시 척 알아채고 즉시 대답이 온다. 

-정년퇴직 건이요?, 아마 그대로 실행될 겁니다. 60세를 넘은 사람들은 모두 명퇴가 되고 나머지 분들은 우선 퇴직금 계산하고 촉탁으로 60세까지 승선하는 걸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최소한의 바람으로 생각했던 60세까지는 그런대로 승선이 가능해 보이는 모양이다. 


-선장님은 아직 더 타실 수 있으시겠던 데요. 

하더니 

-한꺼번에 모두 물러나게 되면 당장 후임자가 없어 저희들도 힘들거든요. 

하는 말까지 덧붙인다. 


결국 60세 이후의 촉탁 근무는 힘들 것 같다는 뉘앙스가 그 말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이상 미련은 버리고 당장 현실로 다가와 있는 사항을 이야기하기로 한다. 


-우리 배 독킹 수리는 어디서 할 예정인지 알 수 없어? 

-아, 예. 아마 중국에서 할 겁니다. 

-사실은 다음 독킹 때 집사람과 동승하려고 했었는데, 힘들게 된 것 같구먼. 

-왜요? 동승하고 나가시죠. 

-아 지금 회사 분위기도 그렇고 그런데 타고 나갈 수 있겠어? 

-괜찮습니다. 그 일이야 저희가 하는 일인데요. 뭐.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한번 동승을 신청해야겠구먼. 

-예, 그렇게 하세요. 

시원스레 응답하는 소리를 듣고 동승을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이번에도 우리 팀장인 J 부장, 오션 코리아 때문에 우리 배에 또 못 오게 되었잖아? 

배들이 국내 기항할 때면 담당 팀장이 방선해서 제반 사항을 둘러보고 배에 대한 지원을 해주곤 하는데 지난 항차에는 오션 팍의 독킹 때문에 못 왔었다는 걸 강조하며 묻는 말에, 

-광양으로 오십니까? 

 하고 우리의 행선지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저라도 한번 가서 뵈어야지요. 인사도 드릴 겸해서요. 

 하는 대답이 온다. 

-그래?, 그럼 광양에서 만나도록 하지, 하여간 반가워. 기관장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으니 전화 끊었다가 다시 걸도록 하는 게 낫겠지? 

-예, 그렇게 하지요. 

통화 시간이 제법 길게 늘어났기에 전화를 끊도록 이야기한 것이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며칠 전 내가 꼽아 놓았던 명퇴 해당자 명단 중 누구누구가 그만두어야 하는지 대충 나타나는 사람들을 계산해보기로 한다. 


 물론 58세 이상이면 모두 명퇴는 당하지만 그나마 촉탁으로라도 더탈수 있는 계산을 60세까지로 한다면 나도 지금부터 내년 말까지 촉탁에 해당이 되고, 제 나이로 학교 들어 간 사람이라면 18기부터 퇴직금이 정산될 거고 16기부터는 그야말로 명퇴로 배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로 해당되겠다. 


문득 아이들의 결혼이라도 내가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안에 끝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얌체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의 발상이 동반하여 떠 오르는 것이다.


 이제 내년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의 배우자가 나타나 한 명이라도 가정을 이루어 주었으면 바라는 마음 간절해짐은, 그동안 너무나 아이들의 생활에 등한해 있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반작용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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