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안에 갇힌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
귀뚜라미가 운다. 노래를 부른다고 이야기해야 옳겠지만 지금 그들의 입장으로 봐서는 운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도 같다. 육지로부터 5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기껏해야 철판으로 둘러치고 막아진 공간ㅡ로 된 배 위에서 제깐에는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고 노래랍시고 부르고 있는 귀뚜라미 소리가 처량하다.
밤새 날개깃에 보풀이 일도록 노래를 연주한다고 해서 그 노래 듣고 찾아오는 연인이 있기나 할까? 있다면 그 연인 역시 바다 가운데의 슬픈 유배를 지니고 있는 숙명인 것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내가 지나치는 인기척을 내면 노랫소리 그치고 기척을 숨기기도 하지만, 어떤 녀석은 자신의 처지를 일찌감치 깨달았는지 갑판으로 기어 나와 움직거리고 있다.
갑판 투광등 불빛에 어리는 그런 모습을 언뜻 보았기에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열심히 걷고 있던 내 신발 아래 그대로 밟혀서 무주고혼이 될 뻔 한 녀석도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육지 쪽에서 불어오니 파리를 위시하여 온갖 곤충들이 다 몰려왔는데 녀석들도 그중의 한 종류로 배를 찾아온 불청객 손님들이다. 버마재비(사마귀)도 보였고 잠자리, 나비, 나방이, 풍뎅이, 그리고 작은 몸매의 날파리 종류와 모기까지도 왔던데, 귀뚜라미도 거기에 끼어 왔다가 새벽이 되니 자신이 처한 처지도 잘 모른 채 그렇게 청승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고 나는 괜한 내 설음에 처량하게 울음소리로 듣고 있다.
원래는 우리 배의 스케줄이 오늘 낮에 안벽에 대려던 예정이어서 혹시 오늘 낮까지 잘 넘기고 살아남기만 한다면 부두에 도착한 후, 다시 육지로 내려가게 되어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커짐도 기대해 주었는데....
방금 접수된 텔렉스로는 접안 예정 시각이 다시 내일 새벽으로 밀려나고 있어 한밤을 더욱 목놓아 울어야 하는 처지가 된 그들이 살아서 배를 떠날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내일 새벽은 득달같이 배를 움직여야 하므로 새벽 운동을 할 수가 없어서 그들이 살아남았는지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부두로 가야 할 입장이다.
한나절만 더 배에서 죽지 않고 견디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의 삶도 높은 곳에 살고 계신 신의 눈으로 내려 다 보면 이런 귀뚜라미의 모습과 다를 게 하나도 없겠거니 여겨진다. 그러니 나의 현재 처해 있는 입장도 이미 정해진 신의 룰에 의해 진행되는 일로 여기어 아득바득 투쟁적으로 반발만 할 게 아니라,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도록 함이 마음도 몸도 편하게 하는 일이려니 여기기로 작정하며 때 아닌 곳에서의 귀뚜라미 노래를 울음으로 해석하려는 마음을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