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바쁘게 설쳐야 하는 입항 준비를 위해 기상하는 시간을 서둘렀다.
그렇다고 꼭두새벽이긴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4시면 깨어나는 습관이라 힘들지 않게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하나 진행되는 일이 늘 하던 대로의 운동이 아니고, 브리지에서 계속 서있으면서 잠시 잠깐씩 움직이지만, 정신은 온통 배를 움직이는 일에만 매달려야 하니, 고달픔 속에 하루를 시작한 셈이다.
더구나 항구에서의 이런 일은 내가 직접 행하는 것이 아니고 도선사라는 제삼자가 하는 걸 옆에서 거드는 정도로 진행하지만, 막상 사고라도 나면 전적으로 선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으니,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바로 선장이 아닌가?
도선사가 제대로 본선의 조선을 잘 하는지를 지켜보고 제어해야 하는 역할까지도 가져야 하는 선장의 업무는 출입항 때만 되면 만만치 않은 부하(負荷)를 선장에게 지우곤 한다.
예전 80년대 초창기 시절. 이곳을 다니기 시작해서 얼마 안 지난 때에 경험한 일이다.
그때는 도선사가 지금처럼 헬기가 아니고 도선 보트로 승선하기 때문에 파도가 좀 있는 날은 승선하는 도선사나 그를 보조해서 지켜줘야 하는 본선 모두가 고생을 해야 했다.
그 당시의 어느 날 시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인데 도선사가 나오겠다고 연락해 준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시간만 자꾸 흘러 이제나저제나 나타날 도선사를 기다리며 조금씩 움직인 것이 어느새 항구의 입구 방파제에 접근되어 있었다.
그만큼 배가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그때 항구를 빠져나오는 다른 배를 가깝게 만나게 되어 매우 당황하였던 일이 있었다.
당시 약간의 안개로 인해 시정이 좋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나도 그만큼 선장으로서의 경험 부족으로 겁도 없이 방파제 부근까지 접근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다 보니 너무 시간을 끄는 경향도 생겼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라는 믿음을 그 경험 이후로 갖게 된 것이다.
21일로 예정했던 접안 시간이 오늘로 변경되어 늦어진 전력이 있어 이번에도 혹시 또 늦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체크하며 알아보니 다행히 재 약속한 시간인 오늘 새벽의 움직임에는 변동이 없단다.
닻을 뽑아내어 도선사가 승선하는 위치로 배를 옮기던 중인 새벽 6시 15분 드디어 파이로트는 헬기를 타고 나타난다.
옛날의 보트를 타고 나타나던 모습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하늘에서 하강해 오는 도선사의 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