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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ul 22. 2017

부부는 일심동체라는데...

또 전화 걸게요


 지금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정년 조정에 관한 이야기를 집에다가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계속 고심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출근을 안 하고 집에 있을 아내를 생각하여 전화를 걸어볼까 하던 계획이었지만, 전화를 걸게 되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 어찌할 가를 두고 고민하다 우선은 전화를 걸지 않기로 했었다. 


 전화 걸기를 보류한 내 행동이 아내가 이따금 농담 삼아하던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에 위배되는 일이라 여겨지니, 모르긴 몰라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 가지고 나중에 뭐라고 불만을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서로가 혼자인 채로 떨어져 있으면서 결론도 못 낼 일을 가지고 생각만 깊이 하다 보면 괜히 몸과 마음에 축이 날지 모른다는 염려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보탬을 준 것이다. 

당분간은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채로,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고민을 하기로 결정한 마음의 갈피는 착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면서, 굳혔던 마음을 바꾸어 집으로 전화를 걸기로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전화를 직접 받아 드는 아내에게 회사로부터 전해진 나의 명퇴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사리 하였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오히려 나에게 위로의 말부터 건네주는 아내이다. 


 나는 섭섭하게 생각 안 한다고 극구 변명을 했지만, 이야기하는 어투에서 섭섭함이 묻어났던지 실망하거나 걱정거리로 여기지 말라며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너스레마저 치며 내 마음을 북돋아 준다. 


 나 역시 극구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기기 위해서도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기로 한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신 있게 내놓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던 결과가 좋게 나와 그것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지난번 아내를 수술하게 한 대장암의 찌꺼기(임파선 전이)가 조금 남아 있었던 것은 의사를 통해 나만 알고 있는 줄로 여기고 나 역시 입 다물고 있었던 일이었다. 

아내 역시 그것이 골반 쪽에도 남아 있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이 계속 다른 곳으로 번지며 자라게 되면 문제가 생기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으니 언젠가는 소멸될 것이니, 아무 염려 말라며 예의 씩씩하고 명랑한 말투를 계속하여 나로 하여금 다시금 감탄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보게 만들고 있었다. 


병명이 밝혀지고 수술을 해야 했을 때, 아내는 자신을 찾아온 병을 병마로만 보아서 무섭고 싫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친구나-그게 좀 힘들기도 하지만- 손님으로 생각해서 잘 대접하며 같이 살아갈 생각이라는 각오를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그때 나는, 

-아! 이 사람은 결코 병마에 굴복당하거나 지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기는 길을 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 개인에게도 더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우리 가족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역시 큰 행복이라는 확신을 한 번 더 내 맘에 심어 준 일이었다. 

그러니 과학적인 검사에서 계속 이상이 없다는 결과는 하느님이 우리 가정에 내려주신 비할 데 없이 큰 축복이라는 점.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큰 애는? 

-그 애도 요새 건강이 좋아요. 지금은 성경공부하느라고 바빠요. 


이렇게 아팠던 우리 식구들은 모두가 자신의 안에서 건강을 되찾아 내며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이제 나도 거기에 합류하여 그간의 너무나 떨어져 살아오던 지난 세월의 보상을 차분히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모든 생활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리라 작정을 한다. 


-다음에 다시 전화할 게. 

10 여 분의 통화를 이루었건만 단 몇 초간의 통화 마냥 짧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남는 끊어야 할 시간이다. 또 걸 것을 약속하며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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