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해가며
땅! 땅! 땅!
어지간히 큰 소리로 귓가를 울리는 철판과 파이프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온다.
오늘의 과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외부 비상계단 중 녹이 슬어 구멍이 나고 얇아진 발판을 잘라낸 후 새 철판으로 바꿔 용접해 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용접 똥을 걷어내려고 두드려 주는 소리이다.
기관이 움직이며 내는 작은 진동과 나지막한 소리 만이 주위를 감돌던 상황에서 갑자기 뛰어들 듯 나는 두드리는 소리에 잠깐 신경을 써 보지만,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면서는, 즉시 소음으로 느끼지 않고 예정했던 대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니 흐뭇한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조금 있다 작업한 곳을 찾아가서 얼마나 새 철판과 새 파이프로 깨끗하게 계단을 바꿔주었는지 수리한 결과를 확인해 볼 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심정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늘 있는 귀에 익은 소리 외에 나는 소리는 그 소리가 설사 선내 정비작업을 하여서 나는 소리라 해도, 시끄럽고 듣기 싫은 면만 크게 부각되었기에, 일하는 과정이나 결과의 즐거움은 알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왔었다.
그러던 내 생각의 패턴이 이제 이 생활도 접어두고 떠나야 할 세월이 다가선 것을 각오하면서부터는 수리하는 일을 하고 나서 말끔하니 새 단장되어 나타나는 현장의 모습을 보고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나 즐거울 수가 없는 일로 새삼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 두드리며 해낸 일은 아니지만, 일이 진행되도록 지휘하고 일을 하도록 이끌어 갔기에 나타난 일의 결과이니, 내가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며 특히 깨끗이 마무리되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의 기분은 내가 직접 불꽃을 튀기며 일을 한 것보다도 더 기쁨을 주며 다가선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일과 그 결과의 기쁨을 예전부터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있지 않았을까?
하여간 오늘 같이 소나기성 비라도 뿌려지는 날엔 그 비로 인해 작업의 진도가 지지부진되는 일이 싫어 자주 하늘을 보며 비가 가까이 오지 않도록 빌 정도이다.
아울러 가능성이 보이기만 하면, 비구름을 미리 피해 주어 비에 맞지 않도록 배의 타를 써서 배를 돌려주는 일 조차 마다하지 않고 있다.
사실 바다 위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게 되는 경우, 비가 내리는 곳과 안 오는 곳이 완연하게 구별이 되는 경계도 볼 수 있기에, 미리 배를 잘만 돌려주면 많이 내리는 소나기의 세례를 받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2001년05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