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옆에 있듯이 느껴지는 가족에게
큰 애에게
편지 잘 받았다. 우선 더워지는 계절에 건강 조심하여라.
제일 먼저 할머니에게 아빠의 안부 인사부터 전한 후 이 편지를 읽어라.
지난 어버이날을 집의 가족들 모두 모여 즐겁게 지냈다니 좀 떨어져 있는 내 상황이긴 하지만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다.
네가 생화, 그것도 화분에 살아있는 생화를 할머니와 엄마에게 선물로 했다는 마음 충분히 이해하겠구나.
나도 같이 있었으면 받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거나 받은 바와 진배없으니 그건 되었고.
막내가 15일에 휴가 나온다면 이제 며칠 남지 않았구나. 아빠 배의 지금 예정으론 16일쯤 부두에 접안하는 걸로 되어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화를 걸어서 너희들 목소리 모두 들을 수 있겠구나.
내 아들들이라서 만이 아니라 너희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항상 잘하고 있을 거라는 점 확신하니 그 녀석도 군대생활 멋지게 잘하고 있는 모습으로만 떠오르는구나.
혹시 15일에 나한테서 이야기가 없거나 연락이 미처 없더라도 녀석이 집에 오면 즉시 나의 안부와 격려의 말을 전해줘라.
둘째도 새 회사에 정을 붙이고 잘하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드는구나. 열심히 잘하라고 하이 화이브! 해줘라.
이 뒤에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도 곁들여 있는데 앞으로 집으로 보내는 편지는 모두 네 멜을 통해서 할 작정인데, 참! 네 ID에 STORM이란 글자는 왜 넣었니?
배를 타는 나로서는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STORM이라는 단어인데, -아니 그 내용이겠이만-, 왜 그러는지는 알만 하지 않니?
그렇다고 네가 그 이름 쓰는 것 말리는 건 절대 아니다. 남자다운 기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편지 쓰다 보니 어느새 밤 열 시가 넘어섰구나.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꾸나. 잘 자라. 내 꿈 꿔! 그런데 우리 사이에 이런 인사 말 쓰는 게 좀 이상한 것 아니니?
그럼 다시, 좋은 꿈 꿔!로 바꿔줄게 ㅎㅎㅎ.
호주 동북쪽의 산호해를 지나면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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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B.B 보세요.
참 오랜만에 당신한테 편지를 띄우는구려. 예전 같이 SSB 전화라도 자주 할 수 있으면 목소리라도 들어 덜 지루할 터인데 요 즈음 쓰고 있는 통신 설비로서는 전화를 자주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이렇게 메일을 이용하려고 작정하며 편지 쓰기를 시작합니다.
물론 위성전화야 걸기만 해도 그대로 즉시 연결이 잘 되지만, 그 사용요금이 엄청나게 비싸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용하지 않으려 해서 결국 소식 전함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죠?
광양에서 당신과 의논했던 여러 가지의 그 후 이야기가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또 당신 회사와의 사건은 어떤 해결의 방법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역시 알고 싶고요.
계절이 계절인 만큼 뙤약볕이 무척 뜨거울 텐데 열심히 출근해야 하는 당신 모습을 그려보며 첫째로 건강에 유의하라는 이야기를 보냅니다.
당신이 회사에 출근하며 일을 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피곤하지 않게 몸을 써야 합니다.
피곤이 누적되다 보면 짜증 역시 같이 불어나서 당신의 가장 뛰어난 덕목인 세상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깨어질 수도 있기 마련이라 괜스레 가족 간의 대인관계에 작은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욱 부탁하는 말입니다.
이제 퇴직하게 되면 그동안 집 떠난 생활로 같이 못했던 지난 세월들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같이 있을 시간들은 보다 유용하고 좀 더 즐겁게 써야 할 건데, 그 첫째의 조건 역시 건강이란 걸 말해두고 싶군요. 우리 식구 모두들 건강합시다!!
지난번 다락방을 치우면서 옛적 물건을 정리하던 중에 혹시 <해양대학 학보> 신문은 없었는지요?
제 기억에는 우리 집에 그 신문의 창간호부터 발행했던 모든 신문을 갖다 놓은 걸로 입력되어 있는데, 만약 그걸 찾아낸다면 해대 박물관에 기증하여 제가 다니던 학창 시절의 한 페이지 역사로 보관해 보려고 찾아지길 바라고 있는 거랍니다. 없으면 말고!라고 하기에는 제 기억이 너무나 억울한 느낌이라 이야기해본 겁니다.
사실 예전에는 무심히 거두었던 물건들이지만 필요에 의해 찾아보면 그대로 남아있지 않아 아쉬울 때가 종종 생기고 있답니다.
지금에 보면 그런 것들이 귀중한 물건으로 탈바꿈하면서 결국 이런 사실들이 모인 게 역사라는 생각이 부쩍 드는군요. 결국 나이를 먹어간다는 징조로 여길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겠지만요.
아직도 제 머리 속에는 당신한테 보내는 편지만큼은 연애편지 쓰듯 해야 할 것으로 입력되어 있는데 막상 쓰고 있는 말들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나 잔소리 같은 말 뿐이라 좀 미안하구려. 그래서 여기다 한 소리 새겨 봅니다. 여보! B.B 씨!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참, 다음번에 나오는 우리 회사 사보 여름 호에 특집 기획이 <친구>라는 테마인데 아마도 그런 이름의 영화가 히트를 치니 그에 따라 나온 편집 아이디어가 아닐까 짐작되긴 하지만....
어쨌거나 당신도 그런 보고 싶은 친구 거나 아니면 친구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면 글 한쪽 써두구려, 이 달 28일까지 회사의 담당자에게 보내면 되는데 만약 당신이 써줄 수 있다면 이번 광양에서 나에게 전해줘요.
나는 A-4 두 장 분의 같은 제목의 원고를 이미 써두고 있다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당신의 소식 들으면서 또 보낼게요.
당신의 반쪽 -H.T-
2001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