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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12. 2017

아이들의 편지


아버지 서울은 맑음입니다. 

모처럼 봄비가 내려 활짝 개인 아침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담장 위엔 장미꽃이 한 두 송이씩 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라고 할머니와 어머니께 카네이션 화분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것'이 더 좋더라고요. 꽃은 꺾어지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는 거라 생각돼서요 

예쁜 꽃에 둘째의 선물까지 받으시곤 두 분 모두 기뻐하시는 모습이셨어요. 

아침엔 군에 있는 막내가 '특별히'전화까지 했었고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전공과 관련된 책도 정기 구독하여 읽고 있고요. 

둘째에게 얘기 들으셨나 모르겠지만 막내가 이달 15일 정기휴가를 나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출근과 함께 '투쟁'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회사 측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요.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교회도 열심히 나가시고 식사도 잘 하시고요. 

둘째도 새 회사에 적응을 잘 하고 있습니다. 물론 친구와 함께 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전 뭐 별 할 얘기 없습니다. 며칠 내로 학원 등록하고요. 아버지가 '특별히' 바라시는 면장 취득을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 구례의 집은 어머니께서 설명하시겠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 같더군요. 자세한 내막은 저도 잘 모르겠고요. 내일이나 모레쯤 어머니가 편지를 하실 때 설명이 있으실 테고요. 


지금은 우리 집의 재건축을 계획하고 계신 듯하더군요. 도곡동 작은 아버지와 만나셔서 상의를 하신다고 하셨으니 잘 되겠지요. 

아버지, 멀리서 집안 걱정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저 아버지만 건강하시면 된다고요. 기둥이 튼튼하면 그 집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요. 아버지, 걱정하시는 맘은 저희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 집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도 지금은 삐거덕대고 있지만 금방 일어설 거고요. 

빠른 시일 내에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더욱 건강해지신 아버지의 모습을요. 그래야 둘째와 저도 정신 차리고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그 날을 위해 노력할 테니 말이죠~. 

2001 년 오월 팔일 어버이 날 아침 

큰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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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둘째입니다.

오늘부로 갑작스레 외근 조와의 행동을 마치고 내근직으로 복귀했습니다. 모회사와의 빌링 등 많은 문제로 기획팀의 일손이 모자라게 되었거든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쁜 일이 떨어진 거죠. 일이 없는 것보다는 일이 있는 쪽이 더 만족스럽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회사에 들어오고 난 다음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진작에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라는 시인의 시집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에서 동명의 시를 인용해봤습니다.

정말 그런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뭐 아직 30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예전에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를 초월하는 문제겠죠

보고서 적다가 아버지께 또 메일 보낼 생각을 했답니다. 기특하죠? ^^* 이제 정말 일해야 할 것 같네요. 뭐 눈치는 보이지 않지만 그간 외근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보고해야 하니까요. 오늘은 어버이날, 술 안마시고 일찍 들어가는 것으로 선물 삼아볼까 해요. ^^* 

2001년 5월 8일, 테헤란밸리 끝자락 주식회사 OOOO 기획팀 회의실에서 

둘째가 보냅니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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