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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16. 2017

나 혼자 간직한 비밀

말 못 할 - 아니 말 못 한- 지금껏 남은 이야기

 나에게는 몇 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 중에 K와 나는 대학만 다른 학교를 다녔지 쌍팔년도(단기 4288년) 중학교 입학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계속 같은 학교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우정을 돈독히 키워가며 오늘에 이른 그야말로 옛말의 죽마고우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이를 이어가는 친구이다. 


 고 3 이 되었을 때도 영화광이었던 둘이는,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되는 재 상영관만 있으면 버스 타는 대신 걸어서 통학을 하며, 버스비를 아껴서 만들어 낸 삥땅 비상금으로 단속에 걸릴 각오까지 해가며 영화관 입장권을 거머쥐었고, 책가방을 옆에 낀 채 영화 관람에 빠져들던 시절도 함께 했었다. 

(당시에는 <학생 입장 불가> 등급의 상영물을 관람하다 불시에 검색당해 적발되는 경우, 학교로 통보되면 최소한 일주일의 정학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가 주로 찾던 영화관으로 서부영화나 활극은 경남 극장이었고, 애정 멜로 영화는 명동 극장이었다.

지금에 되돌아보면 그때 그 자리가 급변하던 역사의 현장이었던 4.19가 나던 날도, 임시 휴교령으로 일찍 집으로 돌려보내 주던 후암동 학교에서부터 둘은 걸어서 서울역에 도착했었다. 

데모대가 장악한 채 질주하던 소방차의 모습에 이끌려 계속 종로통까지의 큰길만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었던 데모대의 모습에 박수를 치던 일이며, 하여간 학창 시절의 시간은 거의 함께 하던 그런 친구가 K였다. 


 그토록 가까운 사이의 친구이지만 나는 30년이 넘도록 그에게 말하지 못한 채 간직한 나만의 비밀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실상은 그 일의 중심에 그 친구가 위치해 있건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는 그런 비밀을 말이다. 


 아직 미혼이던 시절. 

한창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내 직업에 푹 빠져있던 무렵이다. 군대도 갔다 왔겠다, 직장도 확실하겠다, 슬슬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바로 밑의 여동생과 다섯 살의 나이 차이라 둘 중 누가 먼저 결혼해도 괜찮다는 그런 분위기가 우리 집안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배가 우리나라에 입항하여 집에 라도 가게 되면 농담같이 하는 이야기지만, 여동생 결혼은 내가 책임진다는 큰 소리가 나의 레퍼토리로 될 만큼 모든 일에 자신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은연중에 집에서는 큰딸의 결혼은 큰아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주는 것으로 믿게 되어 주위 친척, 친지들에게서 선을 보자는 이야기가 들어와도, -아직 나이도 어린데... 하며 은근히 거절하는 일을 빈번하게 하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나는 연애를 하던 아가씨와 꾸준한 사랑을 놓치지 않아 결국 양가 어른들의 허락 아래 결혼에 골인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생활은 계속 이어갔다. 


 승선 중이던 배가 외국 선사에 용선되어 제법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다가 모처럼 국내 입항으로 어렵사리 찾아온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어수선하지만 반가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어느 날의 늦은 오후. 

-얘야, 그렇게 큰소리만 치지 말고 이제는 진짜 네 동생도 시집보내도록 해 야지. 

-예에~?? 

-네가 동생 결혼은 책임진다던 말만 믿고 선 보자는 이야기가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더니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뚝 끊어졌구나. 벌써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정색을 하신 아버님의 말씀에 찔끔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자신은 장가가면서 여동생의 혼사는 정말로 등한시하고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그때까지 혼자서 생각했던 일을 진행시키기로 다짐하는데, 마침 집에 와있다는 나의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 K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오래간만이다. 얼굴 볼 시간은 있냐? 

언제나 반가운 K의 음성이다.

-그래, 어디서 만날까? 

차분한 K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반문했다.

-우리 늘 만나던 다방 있잖아? 거기서 저녁 일곱 시면 어떠냐? 

-그래, 그러자. 근데 누구 다른 친구들은 연락 안 되니? 

-응, 연락을 안 해봤는데..., 어쨌든 오늘은 우리 둘이서만 만나자. 

-그래? 알았어, 그럼 이따가 보자. 


 저녁때가 되었다. 아직 신혼 시절이라 아내의 눈치를 보아가며 K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나간 이유가 다른 때 같으면 친구 좋아서 가 첫째였지만, 그 날만은 그간 나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 시켜 보려는 의도가 더 앞장서 있었다. 


 약속한 다방 문 앞에서 K는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반가운 악수를 끝내며,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다방 문이 닫혔어?

-아니, 그런 게 아니고...

K는 어딘가 고민이 깃들여진 얼굴로 응수하더니,

-야,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잔하자. 

하며 스적스적 앞장을 선다. 

그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따라나섰다. 

-너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500CC 컵에 가득 채운 생맥주를 받아 놓으며 내가 물었다. 

-아니 별일은 아닌데.... 

-근데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냐? 

-.......... , 실은 나 여자를 사귀고 있어...

-뭐라고? 여자를 사귄다고? 어떤 아가씬데? 

내가 말해 보려던 이야기와 뒤엉킨 사안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떨어내 듯 물어보는 내 심정 위로, 아!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하는 후회의 상념이 물결쳐왔다. 


 K는 한잔 술을 들고나더니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론은 그녀와의 사이에 여러 가지의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긴 하지만 결혼을 감행해야겠다는 것이었고 내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방패막이 역할조차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 우리 다음번 만날 때는 그녀도 같이 만나 인사하도록 해줘.

라는 말을 하며 오래간만에 만난 K와의 해후를 제법 술을 마신 후 끝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모님에게는 무슨 말부터 꺼내어 이야기를 시작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만 버스 종점까지 끌려가 차를 내려야 했다. 

 결국 다음 날 다시 배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 집 문 앞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야, 힘들게 말을 꺼냈다. 

-저...., 실은 K를 매부 삼으려고 했는데 글쎄 그 녀석이 여자가 있다고 하네요. 

 쑥스러운 표정을 한껏 지으며 어렵사리 말을 꺼내고는, 

-이제, 저는 빠지겠어요. 앞으로 선보자는 이야기가 들어오면 잘 챙겨보세요.

 무책임한 장남이요, 도움 안 되는 오라비로 전락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심정에 그렇게나마 어렵사리 일을 매듭지으며 집을 떠난 것이다. 


 참으로 힘든 것이 인생사요 오묘한 것이 남녀 간의 인연이라서 였을까? 짚신짝도 짝이 있다는 말 또한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듯이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 좋은 배필 자리가 나서더니 혼담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시집가게 되었고, 지금은 훤칠한 두 아들을 둔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다. 


 친구 K 또한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게 했던 그녀와 해피 엔딩을 맞이하더니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는 외손자의 탄생을 기다리며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오랜 항해 끝의 귀항 시간을 쪼개어 집에 들르면, 아직도 K는 1순위로 만나야 마음이 풀리는 친구로 남아있지만 매부로 만들어 보려던 비밀만큼은 지금껏 내 혼자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품어 간직하고 있는 말 못 할-아니 말 못 한- 이야기로 지금껏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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