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Sep 18. 2017

비만이 저기로 물러서는구나

어쩌다 살이 빠진 게 아니란다.

좀 전.

브리지에 올라갔다가 볼 일을 보고 다시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득 계단 아래로 내딛는 내 발걸음이 전에 없이 가볍다는 기분이 들어 스스로의 모습을 한번 훑어봤다. 

그리고 찾아낸 결론은, 

-내 배(복부)가 참 많이 들어갔구나!이다.

그런 감촉이 드니 몸은 절로 가뿐해지며, 기분도 그에 따라 날아갈 듯하다는 심정에 저절로 도달한다. 

어휴 기분 좋아! 배를 슬그머니 다시 만져 본다. 


 전에 운동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도, 식사 시간만 되면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은 무조건 버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깨끗이 비워주던 시절에 비해 확실히 몸의 컨디션이 다르다는 걸 홀연히 감지하도록 배는 홀쭉해졌지만, 탄력은 오히려 탱탱해진 느낌이 들어 배에 힘을 주고 한번 두드려 보았다. 


 그런 이어지는 동작을 하던 잠깐 동안의 순간, 나는 최근 너의 뚱뚱해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발상의 전환을 가지기 전의 생각들을 되돌아보았다.


 당연히 배도 좀 나오고(‘좀’이라고 했지만 그게‘좀’이 아니라,‘제법’인 것을) 풍채도 있어야 하며, 특히 중요한 사실은 먹으라고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먹어 주겠다던 결의 말이다.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불교의 이야기를 하며, 죽어 저 생에 가면 이생에서 남겼던 음식 찌꺼기는 모두 한데 모아 먹어야 하는 벌이 있다고 떠들면서, 나는 차려준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음을 강조하고 있었잖니. 

그런데 그런 모든 내 옛 생각을 접어주고, 음식 조절과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가 이렇듯 바람직하게 나타났으니 요사이 너의 모습을 떠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지.


 너는 어찌 생각은 지 모르지만 평소 식사를 하고 난 후 계단을 오른다던가 하여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 숨이 가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몸의 건강에 문제점이 많다는 걸로 이해해야 한단다. 

내가 몇십 년을 흘려보내며(결혼하고 곧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으니) 이제야 깨우친 이 사실을 너에게 당장 알리는 심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내가 어영부영하며 허송세월 했던 그 기간을 너만은 단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이제 건강을 위해 몸의 富티(?)를 파괴하는 방법에 들어가 보겠다. 


첫째, 음식의 양을 줄여라.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 것은 네 생애에 할당된 음식의 양을 쓸데없이 조기에 소비하는 것이라 간주해라. 

나는 적게 퍼놓은 밥에서, 또 한 숟가락 정도의 양을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일부러 남기고 있다. 또한 그런 음식에는 술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운동을 열심히 해라. 시간이 많아 남아돌아 마음 놓고 운동할 처지가 아닌 너이기에 내가 하듯 하루 만보 이상 걷기는 힘들지라도, 계단은 언제나 걸어서,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출퇴근하기 등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안하여 꾸준히 한다면 오늘 내가 느꼈던 가뿐한 몸의 컨디션에 놀라는 기쁨을 너도 틀림없이 갖게 될 것이다. 


셋째, 휴일 날의 일정 시간은 동네 뒷산을 찾아보는 등의 운동을 하는데 못 박아 할애하고, 결코 빼먹지 않도록 하여라. 

이상 세 가지를 너의 중대한 목표로 삼아 매진해야 한다.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로 건강을 더욱 해 칠 수도 있단다. 


 너는 할 수 있다고 아빠는 생각하며 믿고 싶단다. 생활이 힘들다고 운동하는 것에 결코 게으름은 피우지 마라.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지난번 광양에서 네 이모부가 선물 받은 양복이 맘에 안 든다며 입지 않고 있던 것을, 내가 입어보니 그럴듯하게 맞아 내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때에도 나는 양복이 생겨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사이즈 옷인데도 내가 입을 수 있게 내 몸이 변해준 형편이 그럴 수 없이 기뻤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또 연락 하마. 아빠가


위의 편지를 보내는데 아래의 편지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아버지께. 

어제는 회사 직원들과 간단히 소주 한 잔을 나누었습니다. 별로 튀게 살지 않았는데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의 제 별명이 이미 생겼더라고요. 

'대표이사' 이것이 여직원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얘기를 듣자마자 살을 더 빼야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하더라고요.

휴우. 나이 서른에 CEO라니..--; 그런 별명이 붙은 이유가 더 우습습니다. 

출근하기 시작하고 나흘 정도 캐주얼 한 회사 분위기에 맞지 않게 정장 차림으로 다녔거든요. 짧은 머리에 큰 체구... 정장까지 입혀놓으니.. 제가 생각해도 '전대리'나 '전주임'으로 별명이 붙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붙은 '대표이사'...-_-;;뭐 재미있습니다. 대리보다야 CEO가 낫죠. 헤헤.^^* 


아버지 항해는 순탄한지 궁금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너무 가물어서 큰일입니다. 모내는데 문제가 생길 정도니까요. 

가끔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뜨기는 하는데 한 번 시원스럽게 내리는 소나기를 만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큰 일이네요. 

아 그리고... 작은 아버지께서 이번 토요일(내일) 호주, 중국 출장을 떠나신답니다. 아마 아버지와 스케줄이 맞는다면 그곳에서의 상봉을 생각하시나 봐요. 

자세한 것은 작은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호주에서의 형제 상봉...^^* 멋지지 않습니까? 

막내는 요즘도 매일 아침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합니다. 5월로 상병 진급도 했고 하는 일에도 완전히 적응했다고 하니 비록 GOP에 있더라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낼 수 있겠지요. 하도 할 일이 없어서 투덜거리기에 전공 잡지와 PAPER를 정기구독해주었죠. 

지난번 대대 개방 행사 때 보니 동기들, 후임병, 선임병들 하고도 사이좋게 지내더라고요. 미움받을 놈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내의 적응능력은 새삼 생각해도 놀라울 뿐입니다. 

엊그제는 하도 심심해서 근무를 나갔다 왔다는(--;) 소리도 하더라고요. 내무실에서는 이미 서열 2위를 자리 잡고 있다는 말도 함께 전해졌답니다. 역시 막내는 놀라운 놈입니다. 

오늘 저녁, 저도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됩니다. 6시간짜리 향방기본훈련이죠. 남자는 예비군 훈련이 끝나면서 좋은 시절이 함께 끝난다는데 그 말이 제게는 해당사항 없는 말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 앞으로도 창창하니까요. 

오늘 아침을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로 여네요. 원로에 평안하시고 또 메일 보내겠습니다. 아버지 파이팅!!!! 

2001년 05월 OO일 사무실에서 둘째가 올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혼자 간직한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