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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19. 2017

무선 검역을 거절당함.

자그마한 실수가 큰일을 낸다.


 대리점으로부터 무선 검역이 거절당했다는 텔렉스가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수신 텔렉스 용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배를 타고 이날까지 오면서 이런 식의 일은 처음으로 당해보는 사안이라 여간 기분이 상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서류 작성의 미비로 인해 생긴 일로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조심성만 가지고 있었으면 결코 터지지 않을 일인데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무선 검역을 신청할 때, 발라스트 해수의 처치를 한 상황을 팩스로 보내며 서류에 기입하는 난이 있는데, 그 중 호주 항구에서의 발라스트는 언제쯤 배출할 것인가를 기록하는 칸에 날짜를 타이프 한 것이 이미 지나가 버린 1월 29일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날짜 표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리젝트 됐다는 이야기가 무선 검역을 거절하는 이유로 덧 붙여져 되돌아 온 것이다. 


 어떻게 그런 팩스가 나갔는가를 살피고 따져보니, 발라스트 실무와 서류를 담당하고 있던 1 항사가 컴퓨터에서 서류 작업을 하며 먼저 항차에 사용했던 공서류 폼에다 이번 항차에 맞춘 관련 숫자와 날짜들로 바꾸어 넣는 과정에서 미스가 난 것이다.


 먼저 쓰여 있던 것을 완전히 지우고 만들어야 하는 걸 어쩌다 날짜 부분을 그대로 남겨진 걸 출력하여 마지막 확인을 하지 않고 그냥 서명하여 발송한 졸속 처리가 드러난 것이다. 

서류를 발송하기 직전에 최종적으로 서류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여부를 내가 검토하는 일만 제대로 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곁들이니 다음부터는 일일이 발송 전 검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하지만 발라스트에 관한 일은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항사의 전결 사항으로 발송 전에 선장에게 보고만 해주면 되는 선무로 진행되는 일이다.


결국 사람이 바뀐 후 일의 진행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다시 말해 꼼꼼한 체크가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승선하여 일에 차질을 발생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다보니, 그 중심인물에 대한 불신하는 마음만이 계속 커지게 된 것이다. 


 우선은 틀린 부분을 정확히 수정하여서 팩스를 다시 보내주며 무선 검역을 재신청하는 과정을 거쳐 일처리를 다시 해주면서도, 은근히 치밀어 오르는 부아로 잠시 숨을 골라주어야 했다. 


 그 일(발라스트 관련)의 책임자인 신임 일항사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일처리도 얼렁뚱땅 넘기는 스타일이다. 

상관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의 대화는 연신 선장님, 선장님 하는 식의 존칭을 말의 서두나 중간, 끝의 구별도 없이 계속 입에 붙어 다니듯 삽입해서 남용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승선 후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벌써 그런 어투에 싫증이 나고 싫어지는 마음마저 생기는 걸 깨닫고 그래서는 안되지 하는 이성으로 스스로를 달래어 한 수 접어 두며 두고 보는 심정으로 있던 중이었다. 


그 친구 경력으로는 이제 선장을 바라봐야 하는 시점에 가까이 와 있는 상황이기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이 있는 동안에 승진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내 심정이었지만 현재로 봐서는 아직 좀 더 훈련을 하며, 승선 생활도 모범적으로 하는 습성을 키워야 할 것이라는 일차 결론을 내리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들려오는 소문에는 저녁 당직이 끝난 이후인 8시부터 열두 시 가까이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일이 잦다는 소식까지 떠 돌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술을 많이 마시는 스타일로 그것도 혼자서 마시기보다는 타인을 끌어들여 권하며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어제는 실항사를 데리고 마셨다는 이야기도 이미 들어와 있다. 


 사실은 어젯밤 11시 이후에 위성전화가 할인되는 시간을 택해서 다음 항차 지난 후 있을 독킹에 대비하여 작성한 독킹 오더를 회사에 메일로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더욱 빨리 알게 된 그의 엊저녁 근황이다.


갑판/기관 부서별로 나눠서 만들어진 디스켓을 하나로 합쳐 나에게 가져다 주기로 한 그 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서류 작성을 끝내지 못해 결국 할인 시간에 보내지 못하게 되어 나의 채근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배 담당 감독은 10일까지 만들어 보내라고 한 것인데, 그런 저런 일로 결국 오늘 아침에 보내게 된 때부터 이미 나는 그에 대한 기분이 떨떠름해지고 있었다. 


하루가 늦어졌지만, 그렇게 수리에 관한 메일을 제대로 작성하여 보내면서, 브리지에 올라가 한차례 꾸중까지 해가며 단속을 했건만, 오후 들어 대리점을 통해 무선 검역이 거절되었다는 통보를 만나게 되니 오전에 한 꾸중은 아무런 보람도 없는 공염불 같은 일로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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