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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20. 2017

둘째에게

무선 검역이 통과되었다


뉴캐슬 변두리 마을에 있는 공원 동물원의 공작


 어제 무선 검역을 거절했다는 전문을 받고 곧 다시 신청하는 팩스를 제대로 만들어 보냈는데, 그에 따라서 15시에 통과됐다는 텔렉스가 왔다. 

혹시 제대로 통과가 안 되어 나중 입항한 후 검역관이 직접 올라와서 까다롭게 체크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우선 접어도 될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한숨 돌리며 집으로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사랑하는 둘째에게 

오늘 오후 1시 무사히 목적지인 이곳 뉴캐슬 항구 외항에 도착하여 닻을 내렸다. 

이곳 호주는 지금부터 슬슬 겨울철에 접어드는 계절인 셈이라 바람이 제법 불기에 닻을 내리고 있는 외항에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단다. 


 그러기에 급작스런 기상 변화에 의해 닻이 끌려 위험에 빠지는 일 등을 막기 위해 정박 당직을 철저히 서고 있단다. 다행히 오늘은 도착하여 닻을 내리고 난 후 바람이 오히려 잦아진 상태가 되어 지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이 편지를 적고 있다. 


 접안 예정은 모레 오후에 부두로 들어가는 걸로 나와 있는데 외항에서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배의 숫자가 여섯 척 밖에 안 되니 어지간하면 그 예정대로 될 듯하다. 

부두에 들어가면 전화를 하겠지만 이렇듯 편지는 편지대로의 효용이 있잖니? 계속 보내는 것은 그에 따라 답장을 받아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전화를 걸 수 있는 15일까지는 아직도 이틀이나 남아 있으니 그 안에 집에서 오는 멜을 꼭 받고 싶어 한다고 바쁘신 네 엄마에게 전해 주렴. 


 엊그제 네 소식을 받은 것은, 내가 써 놓은 이야기를 전하느라 열었던 멜에서 수신된 것이라 서로가 자신들의 말만 늘어놓은 꼴이 되었지만, 나는 그런 네 이야기에서 아주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이 모든 주고받는 멜에 대한 요금은 내 개인 부담이 아니고 회사가 대신해주는 혜택이기에 조금이라도 경비 절감을 해서 회사의 배려에 보답(?)하려고 멜의 사용시간을 할인시간대인 밤 11시 이후를 이용하려 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늦어져 어떤 때는 한낮에 피곤함으로 두통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자정이 가까워서 잠자리에 들 때도 기상만큼은 새벽 4시 반이면 자동이고 또 운동까지 하는 생활이니 그럴 수 있겠지, 그래서 그런 날은 낮에 시간을 봐 가며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눈을 붙이면 그게 참 홀가분하니 피곤을 풀어주는 데는 그만이 더구나.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중언부언(重言復言)으로 이야기가 튀는 이유는, 예전에 윗사람들이 나이를 앞세워 이야기하던 경험담을 그때는 귀로 흘려듣는 잔소리로만 여겼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보니, 왜 그때 그 이야기의 뜻을 알아듣고 그대로 행하지 못했 단 말인가? 하는 후회되는 마음이 들기에 너도 내 나이쯤 되면 틀림없이 같은 일을 되풀이할 거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다.

그러니 이 자체를 노 땅의 푸념이라고 만 여기지 않으면 너도 합격점은 받은 셈 일러라. 


낼모레 이틀 후면 막내가 휴가 나오겠구나. 

말 안 해도 네가 잘해줄 것은 알지만 그렇게 동생에게 잘해주는 너를 보면 예전 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막 태어난 막내에게 질투를 해대던 당시의 네 행동이 눈에 선하구나.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를 비교하며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삶이란 걸 새삼 느끼며 감회조차 모락모락 일어나는구나. 

.... 중략.... 참으로 힘든 것이 인생사요 오묘한 것이 남녀 간의 인연이라 서였을까? 짚신짝도 짝이 있다는 말 또한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듯이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중략.....


위의 덧붙인 중략된 글은 아빠가 회사 사보 여름 호에 내려고 쓴 원고의 일부분에서 발췌한 글인데 너에게 보내는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인 네 BETTER HALF에 대한 초조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란다.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호주 뉴캐슬 외항 닻을 내린 배 안에서.

2001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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