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둘째의 편지
보이소! 안녕하십니까?
점심때 둘째와 냉면을 같이 먹는데, 아버지가 엄마는 왜 편지를 안 쓰냐고 연락이 왔다고 한마디 하더군요.
저는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금감원에 서류를 내기 전 본사에 전화를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뭐, 연금 연액과 주 계약 보험금이란 글자가 글씨체가 틀리 다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한바탕 하고 금감원에다 서류 내고 법원 중개인을 만났어요.
O숙(보험판매인)이도 만나러 갔다가 같이 데려가서 서류를 보여 주었는데, 별 웃기는 놈들이 다 있다 이건 '이길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변호사한테 의뢰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물어보니 번거롭게 변호사를 살 것이 아니라 무료 변호사에게 이야기해도 승산이 매우 높으니 이길 수 있다. 걱정 말고 금감원에서 나오는 것 보고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해 볼 때까지 할 테니 걱정 마세요.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하시죠? 저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항상 즐겁고 보람된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여기는 날씨가 매우 덥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 몸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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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날씨는 무덥습니다. 습도가 높지는 않지만(가물어서 걱정이죠) 하루 종일 햇빛 받는 콘크리트 덩어리 안에서 저 같은 뚱뚱한 몸이 견디기란(거기 다가 지금 냉방 공사 중이죠. 에어컨은 나오지도 않아요) 정말 지옥 그 자체 죠.
그래도 일에 빠져있는 동안은 더위를 잊을 수 있어요. 일에서 잠시 정신이 팔리면 다시 더워지지 만요.
오늘은 정말 빨리 지나고 있습니다. 벌써 퇴근 시간이네요. 사업기획팀 회식이라 집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다시 맥주 한 잔 걸치게 되겠지만 다들 좋은 이들이라 술자리가 오히려 기다려질 정도입니다.
급여를 떠나서 이만큼 좋은 사람들과 일하게 된 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느껴질 정도니까요. 물론 걱정하시는 것처럼 과음은 피할 거예요. 몸이 피곤할 때까지 마시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는 깨닫고 있으니까요.
더위에 약한 것이 저뿐 아니기에 아버지 걱정도 되네요. 물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배에서 더위 걱정은 적겠지만 더위 속에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아도 에어컨 아래서는 감기에 걸린 다잖습니까? 저보다는 아버지께서 몸 관리에 유념하셔야 할 것 같아요.
형이 요즘 자기 자전거를 빌려 줄 테니 자전거로 출퇴근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답니다. 뭐 쌓여 있는 지방들에 대한 우려가 저뿐 아니라 식구들에게 번져가고 있다는 것에서 충분히 선택해 볼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샤워시설 없는 회사에 다니는 땀 많은 사나이가 선택하기에는 정말 부담되는 일이네요. 매일 목욕탕으로 출근할 수도 없고 말이죠. 여 튼 걱정입니다. -_-;;
애궁. 벌써 회식하러 갈 시간이네요. 아버지, 돌아오시는 길에 늘 주님 함께 하시고 선원분들 모두에게 건강과 은총 함께 하길기원 드리며 오늘 메일은 마칠게요. 건강하세요~
또 연락드릴게요.
2001년 0월 00일
둘째가 사무실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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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둘째의 인터넷 편지가 같이 도착했다.
뻔한 이야기에 늘 하는 안부의 편지 일지라도 한 편씩 아껴가며 읽어보는 게 배안에서의 애틋한 습관이다.
짧은 편지이지만 그 속에서 가족을 만나 서로 간에 끈끈하게 얽혀 있는 사랑을 새롭게 확인해 내며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 채, 두 번째로 천천히 다시 읽는다. 몇 만리 밖의 가족과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