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판단

by 전희태

바다와 관계된 산업이란 관점만으로 우리와 연관된 해운부서를 어업 위주의 수산부서와 단일화 시켜 정부부처를 <해양수산부>로 개편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런 관점으로 보는 듯한 느낌은 사회 저변에서 자주 만나진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해운은 3차의 서비스 산업이고 수산은 1,2차 산업이 혼용된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갖고 있는 산업이므로 종사하는 사람도 그에 준하여 분류함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똑 같은 선원이라는 명칭 때문에 해운에서의 선원과 수산에서의 선원을 동일시하지 말고 전연 다른 직업인이라고 한 번쯤 생각하고 보아 주는 차별화를 우리 상선 선원들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어선에서 동료들 간에 다툼이 발생하여 결국 흉기까지 쓰게 되었으며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불상사로 커졌던 모양이다. 선장은 이 일의 처리를 죽은 선원이 실종 한 것으로 보고 처리하여 일을 끝맺음 하였지만 귀항한 후 경찰의 조사 결과 동료 간의 싸움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판명되어 가해 당사자는 물론 선장도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여 텔레비전 화면을 시끄럽게 메우는 뉴스로 보도 되었다.


여기서 묻힐 뻔한 살인사건이 밝혀져, 억울한 일이 없게 된 건 아주 잘 된 일이지만, 해설하는 뉴스 말미의 이야기에 지금까지 연간 약 460 여건의 실종, 행방불명 등의 사고가 선박에서 발생 하는데 그런 사고 중 이런 식의 뒤처리로 된 경우가 얼마든지 더 있지 않겠냐는 투의 코멘트가 이어지면서 우리를 화나고, 또 슬프게도 만들고 있다. 해양을 대상으로 생활 해가는 입장으로 볼 때 우리는 어선 선원들을 우리와 같은 선원이란 직업인으로 인정 하고는 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 깊숙한 곳에는 우리와 그들과는 아주 다른 직업인으로 생각하는 가슴 역시 갖고 있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직업을 엄격하게 따지면 우리는 해양을 단지 통과해 가는 길로서 이용하는 서비스 직종의 해운인인 반면에 어선 선원들은 그 바다 안에서 직접 노동의 대가를 걷어 올리는 어획이란 일이나 길러서 잡는 -마치 땅에서 수확하고 키우는 농부와 같은 의미의- 어로 전문의 수산인인 것이다. 그것은 배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점만 같을 뿐 다른 상황은 모두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생활을 하기에 같은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과정이나 사고방식도 전연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까닭으로 그 선장이 살인사건이 된 싸움의 뒤 끝 맺음을 제대로 해명하여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행방불명이란 엉뚱한 일로 만들어 놓았다가 진실이 밝혀지는 마당에 살인 방조 내지는 여러 가지 범법을 한 것으로 되어 쇠고랑을 차야 했던 것일까? 어쩌면 좁은 어선 안에서 사고가 난 당시의 선내 분위기가 별로 환영받지 못하던 사자를 두고 어차피 죽은 사람은 할 수 없으니 산 사람이나마 억울하게(?) 고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과실로 인해 사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괜찮겠다고 판단하여 그런 일을 꾸몄을 지도 모르겠다는 유추를 해 본다.


확실히 배안에서 깊게 고민하며 생각해 본 경험에 의하면, 고립된 사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육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방향으로 해결의 가닥을 잡아보던 경우도 종종 있던 것을 기억할 수 있기에 그렇게 짐작해 보는 것이다. 더구나 좁은 배인 어선에서는 분위기상 더욱 그런 경우가 더욱 많을 꺼라 여겨진다.


하여간 안전사고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통계에 잡히는 선박에서의 인명 사고가 일 년에 양손가락 모두를 40 여 번 접었다 폈다해야 한다는데, 그 숫자의 대부분이 어선에서 발생한 것이 현실적인 추세이다. 그런데 도매금으로 떠넘기듯 그 많은 사고 중엔 이번과 같은 일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다는 식의 그래서 조사를 다시 해야겠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방송 기자 코멘트가 해운계 상선의 형편도 함께 싸잡아 하는 이야기로 들리니 매우 불쾌한 것이다.


상선의 선원이란 직업을 그들 방송 기자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기에 그런 식의 발언을 한다고 여기어 다시 한 번 밝혀 두지만,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선박에서 생긴 살인 사건을 그런 식으로 무마하고 처리할 어리석은 선장은 적어도 여러 가지 통신 설비로 언제 어디서라도 육상과 연락이 닿는 요즈음의 상선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확언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런 통신의 발달은 어찌 보면 예전의 화려했던(?) 선장의 권한마저 대부분 축소 내지는 폐지시키며 육상의 시시콜콜한 지시 까지도 가능케 하였다. 선장을 단지 배를 운항하는 현장의 기술자 내지는 기능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게, 현실인데 얼마든지 정확히 보고 할 수 있는 인명 사고 등을 은폐나 호도 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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