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성 저기압의 움직임 예상

여름철 태풍의 씨앗이 되는 열대성 저기압

by 전희태
DS1101(3704)1.jpg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는 기상 상태



일본 기상청의 기상도는 저기압이 TD(열대성 저기압)로 변하면서 북상하는 것으로 진로를 예상하고 있고, 우리 배의 항로에 관한 정보를 회사와 계약하여 추천해 주는 KS WEATHER는 태풍이 계속 서북서진으로 우리가 북쪽을 향해 지나간 트랙을 거의 직각으로 밟으며 대만과 필리핀 사이를 통과해서 남지나해로 들어가는 모양으로 그려주고 있다.


두 가지 다 본선의 위치가 태풍의 중심과는 궁극적으로 300 마일 이상 떨어져 통과되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어 우선은 안심해보지만, 그 움직임의 방향이 전자는 우리의 앞길에서 먼저 북상하며 앞서 지나가는 거로, 후자는 우리가 지난 길을 나중에 가로질러가는 형태로 나오니, 어느 쪽의 말에 더 신빙성을 주어 대처해야 할지 난감한 형편이다.


즉 일본 기상청의 의견대로 북동 진하여 태평양으로 빠져가느냐 아니면 KS WEATHER의 예상대로 남지나해에 들어서서 중국으로 가느냐의 기로에 섰지만, 앞으로 48시간 내에 그 진로가 확정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여간 다른 생각 말고 우선은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겠는데, 속력이 늦다는 것이 이렇게도 마음을 졸이게 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이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 배로서는 대단한 인내를 요구당하는 그런 순간들이 되는 게 아닐까?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걱정에 짜증만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오후 들어서며 일본의 기상도가 어느 정도 북상했다가 서북서진으로 가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예상에서 벗어나서 다르게 그려져 나오는 문제가 생겼다.


추천항로를 믿고 그대로 밀고 갈 경우 대만과 같은 위도에 닿을 무렵이면, 새롭게 내놓은 일본 기상도의 위치와 너무 가깝게 되므로, 결국 양쪽 모두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본선의 움직임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가 생길 것으로 추정할 꼬투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어느 쪽 이야기가 옳은 것일까? 확답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답답한 마음 가눌 길만 없지 않은가?

배의 중요 멤버들을 불러 모아 상황을 설명하고 피항할 여지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물으니, 모두들 피해 가는 게 순리라는 이야기를 하며 우선은 피할 것을 갈망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피항한다는 조처를 취하기에는 현재 폭풍의 위치가 본선과는 좀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저지르기 전에 일단 회사의 의견부터 타진해 보려고 전화를 건다.

우리의 요청을 들은 당당 팀장은 괌의 미 해군에서 나온 기상도를 보고 있던 중이라며, 그 기상도를 팩스로 보내준 단다.


잠시 후 회사를 통해 받아본 기상도에는 항로 추천 회사에서 예상하는 경로와 같이 태풍은 바시 찬넬을 거쳐 남지나해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푸로팅 되어 있다.


그 기상도를 보내 준 이유를 유추하건대, 현행 침로대로 항진함이 타당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준 것이기에, 피항 결정을 우선은 오후 4시 40분에 나오는 일본 기상도를 최후로 받아본 후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결정하리라 작정하며 그냥 달리기를 계속한다.


그런 와중에, 터보챠저의 회전수를 좀 낮추긴 했지만, 파도가 별로 커진 것도 아닌데 배의 속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결단의 순간을 위한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마음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하고 착잡해진다.

4시 40분에 나오기 시작하는 기상 팩스를 받아 들고, 시니어 사관들을 다시 불러 놓고 협의를 재개하지만, 내 마음속으론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저녁 6시. 드디어 그대로 올라가기로 결단을 내리고 저녁 식탁에 앉았다. 밥맛도 모르고 그냥 입에 쏟아 넣는 기분으로 식사를 끝내고 나서, 브리지에 올라가 새롭게 검토할 때에, 가장 새로 들어온 정보의 태풍 위치를 그려 넣고 현재 그 시간에 본선 위치와 얼마나 떨어져 있나?부터 확인한다.


아직 600 마일 이상 떨어져 있어 내일 오후까지는 괜찮다는 결론이지만, 그때부터는 다가서는 거리가 급속히 변화될 확률도 크고, 그에 따라 본선의 기동성이 영향을 받게 되면, 꼼짝 못 하고 태풍 가까이 휩싸일 수 있음을 겁내는 것이다.

그래서 피항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피항의 시간마저 놓친 것 같아 될수록 빠르게 올라가는 길 밖에 도리가 없는 거다.


태풍은 우리들의 신도 아니고 그저 가까이 휩싸이면 무서운 자연의 횡포일 뿐이다. 될수록 가까이하지 않고 지나쳐 가야 할 일이기에 피항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피항의 시간마저 지나쳐버린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을 이루며 될수록 빠르게 올라가 조금이라도 태풍의 중심권과 더 멀리 떨어져서 달리는 길 밖에 도리가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저희가 가는 길에서 태풍의 접근을 막아 주시어, 저희 배가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게 돌보아 주소서!

이제 모든 선원들은 각자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 이렇게 속으로 빌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들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양은 냄비에 담긴 물 닮은 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