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동승제도가 낳은 즐거운 풍경들
기상도상의 폭풍주의 해역을 빠져나오니 확실히 파도가 잦아들고 배의 흔들림이 줄어들어 편안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간 배 멀미에 시달리던 동승 선원 가족인 아줌마들도 황천의 고생에서 벗어나 몸도 마음도 편하게 된것에 안심하게 된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며 돈을 버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의 멀미는 한 번쯤은 당해 봐야겠지요라고 말해주던 이의 모습도 새삼 생각난다. 모든 선원들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지만, 몸이 지치도록 힘들게 하는 뱃멀미로 구토를 해대는 그녀들이야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잔잔해진 날씨를 보며 그녀들이 정신을 차리고 식사도 한다는 말을 보고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가만히 내쉰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해일로 인한 사상자의 수가 3,000명을 웃돌고 있다는 뉴스이다. 자세한 전말은 알 수가 없으나 요사이 재난의 뉴스는 마치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그런 어려움들 같아 섬뜩한 마음조차 든다.
적도 부근의 열대 지방이라 햇볕이 매우 뜨겁지만, 그래도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 없으니 해면은 거울처럼 빛이 나고 윤기마저 흐르는 펼쳐진 융단처럼 매끄럽게 보인다. 그런 좋은 점이 많이 있으니 조금의 불편함은 참으며 힘들어 하지 말라는 뜻일까?
한낮이 가까워지니 실내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한증막에 드는 것 이상의 두려움을 가질 정도의 맹위인 너무나 뜨거운 날씨로 변하고 있다. 만사가 귀찮을 날씨이나 실내는 에어컨디셔너의 조절로 시원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며칠 전까지도 뱃멀미로 고생했던 동승 가족들을 모두 브리지로 초대하여 특별히 조제한 팥빙수를 대접하기로 한다.
어느 유명한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에라도 올라서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서, 빙수 값은 우선 외상으로 달아 둡시다.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빙수그릇을 다 비워 갈 무렵, 땀이 식으니 너무나 시원하다며 그간 제대로 구경을 못한 선내를 정식으로 돌아보겠다며 뜨거워진 갑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주구의 문밖으로 모두들 나선다.
후끈하게 끼쳐드는 열기를 오히려 즐기듯이 주거구역 하우스를 빠져 나와 선수 일번 선창 가까이 가고 있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주머니들이 가고 있는 선수루 마스트에 장착되어 있는 기적 스위치를 잠깐 눌러 보기로 한다.
갑작스런 소리에 크게 놀랄 경우를 생각하여 짧게 눌러 바람이 새는 소리를 감지하게 한 후 다시 그 보다는 좀 길게 눌렀다가 떼어 정식의 기적 소리를 듣게 하였다.
그녀들은 짧은 기적 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을 연출해 보이더니, 잠시 후 긴 소리를 들으면서는 오히려 섰던 걸음을 옮기어 선수루로 들어선다.
배의 기적소리는 멀리서 듣기에는 운치가 있고 로맨틱한 감흥조차 줄 수 있는 소리이지만, 느닷없이 가까이에서 듣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되어 오금이 저리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는 소리이다. 이 기적을 배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사실 타선에게 경고를 할 때이든가, 자신의 존재나 뜻을 조우하는 모든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며, 그런 쓰임새를 위해서 신조시에는 꼭 장착해야 하는 법정 비품이다.
따라서 멀리까지 그 소리가 들리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너무 가까이서 듣게 되면 그 음량이 너무 커서 귀를 멍멍하게 만들며 특히나 갑자기 가까운 거리에서 듣게 되면 마치 심장마비라도 걸릴 듯싶은 놀라움을 가슴으로 느끼게도 한다.
그러기에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를 울리면 진짜로 놀랄 일이라도 생길까봐 적당히 거리도 있는 곳에서 공기 새는 소리처럼 잠깐 내주어 신경을 다독여 준 후 정식의 큰 소리를 길게 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적 스위치를 눌러 본 제일 큰 이유는,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장난이 도가 지나칠 경우도 대비하면서, 배 안에는 이렇게 많은 위험할 수 있는 일들이 사방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큰소리를 갑자기 듣게 하다가는 예상 않은 안전사고라도 생길 수 있기에 조심성을 더한 것이었다.
Forecastle(선수루)에 도착한 가족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뒤돌아서더니 브리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선내순방 행사를(?) 즐거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