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모터베쓸 D.H! 모터베쓸 D.H! 디스 이즈 뉴캇쓸 하버!"
뉴캐슬 항만 당국의 본선들 호출 방송이 VHF 전화기 스피커를 통해 브리지 내에 울려 퍼진다.
조용하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어느 정박선의 스케줄을 알려주려고 부르는 건데 정작 호출받은 당사자인 우리나라의 D선박 소속 D.H 호에서는 아무런 응답을 안 하고 있다. 혹시 발음이 귀에 설어 멈칫거리고 있나 생각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듣다 못한 입항 중이던 현대 스피리트 호에서 그 배를 부르며 항만당국이 찾는다고 알려주어도 묵묵부답인 것으로 보아 선교 당직자가 아예 브리지에 없는 모양이다.
한국 배가 제대로 당직을 서지 않아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제삼자이지만 그 방송을 듣는 심정이 절로 부끄러워진다. 마침 브리지에 같이 있던 삼항사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밤 그 배의 삼항사가 다른 배의 선원들과 VHF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정박 중에 브리지의 사관 당직은 안 서고 타수들만 당직을 서며 자기는 이따금 브리지에 올라가서 확인만 하면 되는 당직을 선다고 편한 것을 뽐내는 투의 통화를 하더라니 그 배의 당직 상태는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점심때쯤 들어 한 번 더 D.H 호를 찾는 방송이 나왔으나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그들은 다시 부르지 않고 즉시 다른 배를 부른다. 이름 불린 그 배가 대답하고 나오니 16시에 파이로트 승선이라고 예정을 알려준다. 혹시 D.H호가 들어갈 선석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니, 너무나 당직에 무심한 그 배가 남의 배이지만 한국 배라는 이유만으로 야속하다 못해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뉴캐슬 하버 컨트롤을 찾는 방송이 나오더니 자신을 D.H호로 밝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음 한편에서 안도하는 심정이 든다. 하버 컨트롤에서 무어라 대꾸하나 귀를 바짝 들이대고 있는데, 첫 번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던 New Castle Harbor가 잠시 후 재차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며, 드라프트(흘수)를 선수 4.6미터 선미 6.5미터 수준을 유지해달라는 도선사의 요구 사항을 통보하더니, 이어 14시 도선사 승선 예정도 알려준다.
입이 부운 듯한 - 심통이 난 - 발음으로 나오는 소리로 느껴지는데 D.H호에서는 스케줄을 알았다고 응답한 후 자신들이 VHF 전화를 듣지 않고 있었던 점을 사과하며 앞으로는 잘 듣고 있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양해를 구한다. 아마도 VHF전화 당직을 철저히 서지 않은 점에 대해 지적받은 모양이라 여겨진다. 그래도 그런 점을 VHF전화로 이야기해 준 배도 없고, 그런 통화를 들은 적도 없으니 모르긴 해도 대리점을 통해 항만당국이 그 배에다가 경고성 전보를 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예정으로 주었던 시간이 되니, 다시 수선스런 통화가 오가며 DH호는 며칠을 기다렸던 외항을 떠나 내항 부두에 접안하려고 닻을 감아올린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양이 뉴캐슬 하늘 아래 고층 빌딩들 위에 걸려 석양을 연출하는 저녁 5시가 되어오니. 열심히 밖에서 순찰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군함도 속력을 올리더니 방파제를 향해 달려 들어가고 있다. 저녁 퇴근을 하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