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생기는 상처
어렸을 때는 아무래도 신경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아서였겠지만, 하여간 몸에 상처 나는 일이 생기면 즉시 알아차리고 대응하여 당연히 치료도 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어쩌다 상처가 생겨도 그 즉시 알아채고 약을 발라주느라 수선을 부리며 호들갑 떨었던 기억들이 당연하였던 것이다.
헌데 어느 때부턴 지 긁힌 상처가 손등에 나거나 팔뚝, 다리 등에 생겨서 피가 엉기고 살짝 딱지가 앉아 굳어진 상태를 한참이나 지난 후에 어쩌다 눈에 뜨이면서야 겨우 알아차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 거다.
그러니 이게 언제 생긴 상처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한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아내도 종아리나 팔뚝에 멍이 퍼렇게 들어 있어 언제 그런 일을 당했느냐고 물으면 그때 처음 본다면서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여러 번 옆에서 보아왔다.
이렇게 감각이 무디어진 건지 아예 신경 줄에 탈이 난 건지 모를 일이, 나이가 들면서 자주 생겨나니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어제도 오른쪽 팔등의 손목 가까이에 1센티미터가량의 긁힌 상처에 이미 피가 나온 게 말라서 엉겨 붙어 있는 걸 발견하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디에 부딪혀 생긴 상처일까를 한참 동안 궁금해하며 찾아보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태풍이 가까이 다가온다고 황천 준비를 대비하며 방안의 물건들을 정리 정돈시키고 의자들은 모두 묶어주느라 그렇게 부산을 떨던 중에, 어쩌다 긁힌 상처가 생긴 모양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원인 찾기는 포기했던 것이다.
이제 태풍도 지났으니 황천 준비를 해제하며, 묶어 놓았던 물건들을 풀어주고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내 책상 컴퓨터 옆에 있는 서류 결재함의 서류를 꺼내어 정리하려고 오른팔을 들어 내밀다가 그 서류함 코너에 손등을 스치게 되었다.
바로 먼저 상처가 나 있던 그 자리의 피딱지의 중앙 부분에 제대로 맞춤하여 스쳐준 셈이 되니 피딱지의 일부가 뜯겨 나가며 다시 새빨간 피가 솟아 나온다.
아하! 바로 저 귀퉁이 자리가 상처를 내게 한 원흉이었구나!
상처 딱지의 가운데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피가 제법 흘러나오는 걸 보면서 그 상처를 만들어 낸 서류철 상자 부위를 만져서 확인해본다.
제대로 끝맺음이 되어있지 않아 뾰족해진 철판과 철판의 이음새 부분을 훑어보는 손가락 바닥을 통해 날카로운 감각이 전해져 오니, 몸이 오싹하니 움츠려 들며 항문을 조이는 전율 조차 찾아든다.
직각으로 만나지는 철판의 사이가 약간 벌어져 칼날 같은 비정함을 품고 있었는데, 짧은 공간으로 이동하려던 손등이 그 위를 스쳐 지나 가려다 그만 순간의 방심 끝에 칼로 베인 것 같은 날카로운 상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만든 원흉의 위치를 찾아냈으니, 우선 그곳을 테이프로 감싸주어서 날카로움을 무마시키는 임시조치부터 해주고 난 후, 다시 재발한 내 상처를 꼼꼼히 소독해준다.
같은 자리를 같은 흉기(?)에 두 번씩이나 상처를 받는 것이 별로 기분 좋은 인연이 아니지 않냐?
이제는 세 번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기분으로 필요한 공구들인 줄칼과 망치 등을 챙겨다가 방금 테이프로 싸줬던 날카로운 곳을 쓸어내어 무디게 해 준 후 접촉면이 온전히 붙어 있게 두들겨 조정해 주었는 데 그렇게 하는 깊은 뜻(?)이 특별히 있다고 느껴본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셨다는 친 할아버님께서, 그분의 젊은 시절인 30대 때에, 아무것도 아닌 상처에 파상풍 균이 침입하여 그로 인해 요절을 하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집안 내력으로 들어왔었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징크스가 절로 들어서는 기분을 털어내려 수선작업을 끝낸 후 손등의 상처에 철저한 소독을 한번 더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