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마사지 해 본 날

기념 삼아 맞추었던 맞춤옷도 찾고

by 전희태


072902DL.jpg 혜영기포(惠英旗袍)<후이인 치파오 HUI YIN GQI PAO>에서 옷을 맞추고 점원과 함께


말로만 듣던 발 마사지를 위해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며 상륙을 감행했다.

아울러 지금껏 택시를 타고 드나들던 패턴도 돈이 훨씬 적게 드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아내와 기관장을 대동하고 체크 게이트에 들리니 마침 지금까지 이곳에서 성당 갈 때마다 이용하던 자가용 택시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웃는다.


당연히 자신의 차를 타고 갈 것으로 여기는 태도였지만, 우리는 요 앞에 나갈 것이란 시늉을 하며 그와 헤어져 걸어서 조선소 정문을 나섰다.

역시 기다리고 있는 많은 다른 운전기사들을 보며 새삼 우리가 이곳에서 이 사람들에게 좋은 밥벌이를 해주고 있던 고객이었다는 인식이 들며 이제는 너무 폭리(?)를 취하는 이들에게서 좀 벗어나야겠다는 오늘의 결심을 다시 확인해 본다.


언덕으로 올라서니 큰 길가까지 태워다 줄 딸딸이 차가 기다리고 있다. 흥정을 하니 5위안에 세 사람을 태워다 주겠단다. 대련 시내 나가는 마이크로버스가 서는 정거장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구두 계약을 하고 탔다.


비좁은 실내이지만 무릎을 맞대고 앉아 털털거리는 움직임 속에 매캐하게 코끝에 달리는 휘발유 냄새를 고달파하며 한 5분을 달려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씽씽 달리는 차들로 인해 마치 고속도로 갓길에 서있는 듯한 기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원하는 차가 도착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빽빽하게 타고 있어 그냥 보내고 다음 차를 기다려 올라탔다. 준비해둔 14위안의 돈을 건네주니 두말없이 받아준다.


우리네 예전 합승 차 비슷한 차로 20인승 정도의 미니버스이다. 그러나 통로에도 낚시 의자 같은 간이 의자를 내 주어 앉게 하는 그런 차이지만 달리는 건 신나게 달려 택시에 떨어지지 않는 시간 안에 대련 기차역 부근의 자신들의 종점까지 데려다준다.

대련09.JPG

아무래도 약간은 뒷골목 뒷거리의 종점인지라 우중충한 감이 있지만 그곳의 건물 뒤 큰 길가로 하늘 높이 키를 세우고 있는 큰 빌딩들의 휘황찬란하게 보이는 화려한 광고 불빛이 밝음을 더하고 있다.


이미 낯이 익은 홀리데이인의 건물이며 발해 명주(渤海明珠)라는 호텔 건물이 울긋불긋한 자신들의 광고 글자를 보이고 있어, 지금 어디쯤에 와있다는 감을 잡게 해준다.


발해(渤海)라는 명칭이 그냥 찡하니 마음에 와 닿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 대조영이란 지도자가 고구려를 다시 재건하겠다고 일어났다가 세운 나라가 발해이다.


바로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곳 요동반도도 그 근거지에 포함된다는 사실로 배웠었고 이 바다도 발해만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발해가 당연히 우리의 역사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중국 역시 자신들의 역사로 발해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딘가 야릇한 감회를 가지면서 바로 옆동네로 옮겨간다.


먼저 승리 광장에 있는 <후이 인 치파오 HUI YIN GQI PAO>(惠英旗袍)에 들려 며칠 전 마쳐둔 아내의 옷을 찾았다.

072904DL(9288)1.jpg 마춤옷을 찾아 입고 포즈를 취하다


혜영 기포(惠英旗袍)<후이인 치파오 HUI YIN GQI PAO> 아내가 중국 옷을 맞췄던 상점의 이름이다.

우리말식 한문으로는 기포이지만 중국말로는 치파오라고 하는 중국 여인네들이 입는 옆 허벅지까지 타져 있는 중국의 고유 의상을 말하는 것이니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한복 맞춤집이나 마찬가지의 상점이다.


승리 광장 승리 백화점 지하에 있는 상가의 한국 의류 상품 전문 판매점 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의 한쪽 끝에 있는 작은 상점이다.


몇 번 그곳을 들려 보았지만 그때마다 구경 삼아 들어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옷을 맞추는 사람은 아직 까지 구경하지 못해서 어느 정도 이들의 입장에서는 비싼 옷을 짓는 곳으로 여겨지기는 한다.

그 자리에서 그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물론 종업원이 양손을 펼쳐 들어 가려준 포장막 뒤에서 한 행동이기에 밖에서는 보일 염려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어림없을 그런 가리개 뒤에서 아내는 서슴없이 옷을 갈아입은 거다.


-당신 중국사람 다 되었어!

옷을 갈아 입고 나타난 아내더러 어느새 이곳의 풍습에 젖어 들은 것이라 웃으며 농담을 건다.


공중변소 세면대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수영복을 갈아입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란 아내였지만 그런 일의 전전 단계쯤 되어 보이는 이런 포장 뒤의 탈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로마에선 로마인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 말이라 피 식이 속내로 웃는다.

이제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중국 여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아내를 앞세우고 발 마사지 집을 찾아 나섰다. 기본료가 나오는 거리라 택시를 탔다.


침대가 다섯 개 나란히 놓인 작은 홀을 가진 그곳은 여러 명의 아가씨와 젊은 총각 한 사람이 있었는데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반가운 일본말 인사를 한다.


커다란 안내판에 발 마사지는 40분에 38위안 전신 마사지는 60분에 50위안 두 가지 다 하는 데는 90분간에 90 위안이란 가격과 안내를 겸한 푯말을 내 보인다.

우리는 발 마사지를 하겠다는 뜻을 표하니 우선 신발을 벗기고 슬리퍼로 갈아 신긴 뒤 각자의 침대로 가 걸터앉게 한 뒤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와 발을 담그게 한다.


아내는 물이 좀 뜨겁다고 하여 찬물을 좀 더 타게 한 후 발을 담갔고 나는 별로 뜨겁지 않게 느껴지어 그들이 처음 가져온 그 물에 그대로 발을 넣었다.

따뜻한 물의 감촉이 손으론 느껴졌지만 발을 통해서는 밋밋하게 느껴져서 아무래도 내 발의 감각이 좀 무디어져 있다는 상황을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 5분 그렇게 발을 담가서 따뜻하게 만든 후 침대에 눕게 하더니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며 본격적인 발 마사지의 순서에 들어갔다.


쑥스러운 마음에 마사지하는 광경이나 방법을 자세하게 볼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안 했기에 발을 통해 전해오는 감각만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그녀의 손길에 맡기고 있었다.

이성의 마사지사가 원칙인지 아내를 맡은 사람은 젊은 총각의 마사지사였다.

마사지 방법을 잘 봐 두었다가 집에서 써먹어 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던 아내는 나와는 달리 그 마사지하는 광경을 될수록 유심히 살펴본 모양이다.


한참을 그렇게 발을 주물러 주는 마사지에 맡기고 있다 보니 어느새 졸음이 찾아드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순간 약간의 코골음을 소리를 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 마사지를 끝내고 그곳을 나올 때, 아내는 내가 코를 신나게 골며 마사지하는 내도록 자고 있었다고 이야길 한다.

실내에 흐르게 해 준 음악 중 예라이샹(夜來香)이란 중국 노래도 나왔었다는 데, 내가 잘 기억하고 좋아하는 중국 노래 중 하나인 그 노래를 그 집에서 들은 기억이 도통 나질 않으니 어느 정도 잠에 빠졌든 게 사실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난 며칠 동안 알게 모르게 내 몸을 덮고 있던 피곤함이 한꺼번에 날아간듯한 개운함에 즐거운 마음 되어 활기찬 모습으로 귀선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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