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전을 쓰고 있던 독크 내 수리선 안에서
오늘은 저녁 식사를 모처럼 갈비구이로 하여 진행하려던 예정이었는데 다섯 시쯤 되면서 끊어진 육전으로 인해 온 배 안이 깜깜해지면서 식사 시간은 더욱 늦어져 가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불이 다시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혹시나 배로 들어오는 경로의 어디에선가 비에 노출된 라인이 있어 누전사고가 발생되어 전기가 끊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면서 전력 공급이 한참 동안 늦어지는 게 아닐까 은근한 걱정마저 더해지고 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선내 조리 팀들은 플래시 라이트를 켜놓아주면서 가스 불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갈비를 굽기 시작하며 식사하러 오라는 전갈을 해온다.
나와 아내 두 사람도 플래시를 비쳐가며 어두운 통로를 조심하며 내려갔다. 어렵사리 취사장에 도착하여 문안으로 들어서려는 바로 그 순간, 끊겼던 전기가 다시 공급되며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마치 우리가 그곳에 들어서며 준비해둔 불을 켜 갖고 들어선 것 같은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자 식사를 위해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전 승조원들이 다 함께 환호성을 치면서,
-와! 사모님이 들어오시니 불이 그대로 들어오네요.
하며 박수갈채까지 보내준다. 진짜로 아내가 불을 갖고 나타난 사람 같은 기분에 나도 같이 참여한다.
그렇게 화기애애해진 식탁에서 기관장은 건배를 하자며 엊그제 슈퍼 마켓에서 샀던 죽엽청 한 병을 내어온다.
라벨을 자세히 보니 45도의 술이며 냄새를 맡으니 약간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여 준다.
마셔보니 좀 독한 느낌이 입안에 맴돌지만, 다른 싸구려 독주들의 냄새나 향기 같지는 않고 독특한 향기가 한참 동안 입안에 남아준다.
그래도 내 입맛에는, 마시는 데 독주 같은 기분이 안 들게 순한 술로 잘 넘어가는 오랑 우엔 보다는 역시 못하다는 느낌이 찾아 든다.
무협지를 통해 많이 낯이 익어진 죽엽청(竹葉淸)이란 술을 진짜 처음으로 대면하며 맛을 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