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by 전희태
대련천주교회.JPG


어제 하루 종일 애타게 찾아보았던 이곳 대련의 성당에서 만나 알게 되었던 율리안나 자매의 명함을 결국은 찾지 못하고 지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래도 만났던 인연을 중히 여기고 같은 교우로서의 연대감을 더욱 도탑게 가져보려는 생각을 가진 아내였기에 마지막 헤어지기 전 연락을 취해 보려고 그렇게 애타게 짐 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오리무중이라 거의 포기 상태가 되어 다른 방법을 강구하려던 중 우연히 책상의 유리판 면 밑에 끼워진 메모지를 보니 바로 그리도 애타게 찾던 명함에 쓰여 있던 전화번호를 내가 옮겨 적어 놓았던 메모지가 아닌가?

혹시나 필요할 것이라 여기고 적어 놓았던 사실을 나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기억만을 갖고 도움을 주려고 서성이고 있던 중 그 메모가 내 눈에 뜨이게 된 것이다.


떠나기 전에 꼭 만나서 식사라도 한번 하자면서 지난번 주일날 성당에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고 난 후 그동안 연락을 취한다고 벼르면서도 차일피일 밀리다 보니 어느새 내일이면 출항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면서 안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메모지에 적힌 번호가 기억에 남아있던 전화번호와 같음을 확인한 후 그곳으로 연락을 취하려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급할 때 시내통화에 수시로 이용했던 중국 선원인 조리수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전화기가 요금 카드가 다 소진되어 할 수 없이 독크 야드 바깥에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방법만이 남아있다.


결국 배에서 육상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초소를 지나야 하므로, 정식 외출과 같이 여권을 가지고 나가려고 준비하며 간단히 손지갑도 함께 챙기던 중 우연히 펴 든 여권의 틈새에서 그렇게나 어제부터 찾았던 명함이 슬며시 튀어나온다.


멀리 있은 것도 아니고 외출할 때마다 늘 상 갖고 다니던 여권의 책갈피 속에 곱게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똑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 이것도 인연의 골이 아름답고 깊기에 그리되는 모양이라며 은근한 아전인수의 생각마저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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