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말년을 조심하라고 그러지

안전은 언제나 조심할 항목이지만

by 전희태
C7(3650)1.jpg 어느 선박의 선회경(Tactical Diameter)


선박이 전진 항주 중 전타하였을 때 취하는 행동 범위를 나타낸 도형.

각선의 크기와 특성에 따라 그 움직임 범위나 크기가 모두 다르다.


항해사로서 본선으로 처음 부임하여 승선하는 해기사들은 강제사항으로 당해선박의 브리지에 게시되어 있는 이 도면을 제일 먼저 보고 그 숫자를 항상 염두에 두고 해상에서 만나는 타선박이나 위험물들을 피하여 항해할 때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각선은 -전속 좌, 우현 전타와 -반속 좌, 우현 전타의 네 개의 선회경 그림에 그 길이를 표시하여 브리지에 게시해 두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북태평양을 대권으로 항해하려면 일본 쓰가루 해협을 빠져나가야 하므로 동해를 가로 지르기로 나서야 한다. 이제 부산 앞바다를 지나치면서 점점 멀어져 가는 육지와의 거리가 핸드폰이 연결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쯤이 되리라 여겨질 무렵 전화를 걸어 볼까 준비를 한다.


태풍이 일본 열도를 치고 지나간 여파가 비록 좌 반원 이긴 하지만 남아있기에 파도와 바람이 제법 일며 불고 있다.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날씨이긴 하지만 그래도 햇빛이 이따금 나타나서 음울한 기분만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부산, 울산 등의 선박 출입이 잦은 곳의 앞바다이므로 많은 배들이 알게 모르게 지나다니는 모습이 눈에 드는데, 우리와 비슷한 코스를 가지고 오른쪽 뒤로부터 접근하여 오는 작은 탱커가 있다.


처음에는 제가 알아서 충분하게 배 간의 거리를 만들어서 지나쳐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아왔으나, 아무래도 가깝게 접근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을 듯싶어 조심스러운 어투로 그 배를 VHF로 불렀다.

응답을 하더니 챤넬을 바꿔 우리 배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왜 자꾸 자신들에게 접근하느냐는 짜증 섞인 발언을 하며, 자신들은 울산을 향해 간다는 말까지 하는데 그 말투가 영 기분에 들지 않는다.

 

그 뜻은 자신들이 우리 배보다 빠르다고 여겨지니 우리의 우현 뒤쪽에서 추월하면서, 결국 우리 배의 진로를 가로질러 앞서 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미 그 배가 접근하는 상황이나 그들의 의도에 비추어 볼 때, 본선은 통상적인 조우 시에서는 피항 금지 동작인, 좌현 전 타로, 응수해야 충돌 위험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란 판단이 든다. 


우선 배를 좌현으로 틀어준다. 그 배와의 사이를 벌어지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며, 귀선은 우리 배와의 접근을 조심하여 타를 사용하여 지나쳐 가 달라는 요청을 전달해준다. 

그런 와중에도 그 배는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 않고 있어, 계속 가까워지는 느낌이 아주 안 좋다.

당신 네 배도 피항 동작을 취해, 배 사이를 벌려 놓으라고 고함치며, 왼쪽으로 돌리고 있던 우리의 타를 좀 더 쓴다.

우리 배의 꽁무니가 터닝을 위해 좀 더 무디어진 전진 속력으로 인해 더욱더 그 배의 선수와 접근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을 바싹바싹 타들어 가게 한다.


그 배에서도 우현 전 타를 시작한 모양이다. 서로가 반대 방향으로 터닝이 시작되니 선수는 벌어지기 시작하지만, 꽁무니끼리는 점점 가까운 접근이 시작되는 형상이다.


이른바 Kicking이란 터닝 시의 터닝하는 반대편으로 선체가 밀리는 현상이, 이제 양선의 선회 운동과 연결되면서, 꽁무니 쪽이 서로 가깝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배가 전타를 하여 발생하는 운동의 제원을 그려서 조선에 참조할 수 있게 강제적인 조치로 브리지에 게시해 둬야 하는 그림인 Turning Circle 의 영상이 일순 눈앞에 떠오르며 그것들의 길이가 몇 미터였지? 하는 기억 속으로 Tactical Diameter, Advace, Transfer라는 단어들이 어지럽게 휘저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길이의 기억을 해내기에 앞서 속마음으론 어서 빨리 돌고 돌아서 충돌의 위험 범위에서 벗어나라고 기원하듯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지만 아직 어떤 이상 징후도 느껴지지 않으니, 슬그머니 그 배의 확인을 위해 뒷 창문 옆으로 가 본다.

순간 서로의 최단거리가 100 미터 정도까지 가깝게 다가섰다가 이제는 더 이상의 근접은 사양하듯 다시 멀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오 감사합니다. 무사히 지나치게 해주셨군요.

감는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안전한 거리가 되도록 떨어졌고 서로가 자신의 침로에 다시 복귀하게 되니 그 달리고 있는 형상이 아까 그 배가 접근하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되돌아 가고 있다.


결국 그대로 자신들의 침로만을 다시금 고집하며 가게 된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느낌이 든다.

상대 선에게 또 무엇이라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해봐야 통할 것 같지도 않아, 아예 내가 배를 왼쪽으로 더욱 돌려서 그 배의 뒤로 빠져 돌아 나가는 방법을 취하기로 한다.


나의 이런 판단으로 결단한 행동에 대해 그 배에서는 자신들이 잘해서 그리 된 줄로 착각을 했는지, 도와주며 조선했던 본선의 협조에 대해 아무런 공치사의 말조차 없이 그냥 사라져 간다.


제법 치는 파도에 배가 옆으로 누우니 마침 발라스트의 주입을 위해 에어벤트를 통해 오버 풀로우 되고 있던 해수가 바람에 포말을 날려 온 갑판 상에 골고루 뿌려주는 불이익(?)을 당하게 한다.

갑판상 구조물들에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서는 청수로 씻어내야 하는 일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무사히 한 바퀴를 돌려서 내 침로로 다시 들어서고 보니 괘씸한(?) 상대선 녀석은 저 앞 파도 밭에서 들까불면서도 열심히 제 갈 길인 울산항 쪽을 바라고 달리고 있다. 우리의 협조 동작에 대해 일언반구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말이다.


제대 말년의 징크스를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 한, 오늘의 충돌 예방법에 따른 내가 취한 행동은 과연 적법한 것이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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