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외항에서의 하룻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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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외항 D-2 묘박지에 투묘를 하고 여기서 받기로 한 선용품 및 연료유의 수급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가다. 다음 항차의 선적지를 가기 전에 보급품 등을 조달받기 위한 중간 기착(항)지로 여수가 선택된 것이다.


10 knots 정도의 바람이 불고 있어 작은 고기비늘 정도의 파도가 일어나니, 이제 수속 차 통선으로 들어올 사람들에게 승선하기 힘든 어려움을 선사할지도 모를 께름칙함을 갖게 한다. 아니 당장 하선해야 할 아내에게도 작은 부담이 될 그런 날씨가 좋아지라고 빌어보는 마음 간절하다.


새벽 두 시에 도착하여 투묘시키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근 두 달에 걸친 신혼 기분 같았던 아내와의 이번 여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된다는 아쉬움에 잠마저 설치며 새벽을 맞이한 시간이다.


아침이 되어 나타난 기름 배와 물 배 그리고 부식 배들로, 우리 배의 선미 쪽 옆 사이드 부분은 바글거리는 시장터를 연상시키고 있다.


드디어 종종거리며 준비하고 있던 아내가 하선하여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괜히 심통이 나고 씁쓸한 심정이 되어 일부러 아내의 기분을 긁게 만드는 이야기를 걸어 보기도 하지만, 아내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인지 마찬가지의 삐딱한 태도와 응수로 나를 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일항사의 부인이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남편을 만나보기 위해 흔들리는 통선을 용케 참아가며 배를 찾아와 승선하였다. 단 몇 시간의 만남을 위해 찾은 것이지만, 아마도 이번 중국에 기항 중에 집의 돈 50만 원을 더 갖다 쓴 것의 용처를 따지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품어 보지만, 그 돈에는 자기 아내를 위한 선물을 사는데 쓴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어쨌거나 아내는 먼저 나가는 부식 용달선 편으로 나갔고, 일항사의 부인은 교대자 통선 편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날씨가 새벽보다는 괜찮아져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안전하게 승하선 하여 한 숨 돌리고 있다.

오후 네 시가 되니 모든 보급품의 선적 작업이 끝났다. 이제 출항에 임해야 하는데 출항 전 테스트를 해보던 중, 3번 발전기의 취급에 이상이 발생하여 그걸 해결 못하고는 출항이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기관장의 보고가 들어온다. 

기왕 그 수리가 불가피하다면 대련 독크에서 미진하게 끝내고 온 조타기와 조타용 동력장치의 이상 상황도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를 덧붙이었다. 본선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부산에서 수리 팀이 오게 되었다.


어차피 하룻밤 묵어갈 형편이 된 것이지만, 배를 찾은 가족인 일항사 부인은 교대자가 내리는 페인트 공급선을 타고 같이 나가도록 배려하였다.

그런 야속한 결정은, 하룻밤 묵어 가족들을 만나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 싫어서였지만, 일항사 부인의 남편 찾은 마음을 외면한 것 같아 좀은 안된 기분이다.


그러나 육상의 그 누구도, 하루를 더 묵어 가려고 선원들이 긴급수리 상황을 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현장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마음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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