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어 브리지에 올라가니 비와 안개가 서로 엇갈리며 별로 좋지 않은 시정 아래에서의 항해가 계속되고 있다. 마침 우리 배의 약간 좌현 앞쪽에서 접근해오는 타 항행선의 좌현 등을 보며 우리 배는 어떻게 그 배에 대해 행동해야 하는가를 아내에게 이야기해주며 브리지의 좌현 쪽으로 나갔다.
작은 빗방울이지만 바람에 밀리며 달려드는 서슬이 제법 시퍼런 날씨다. 따끔거리는 느낌을 뺨에 받으며 현등이 보일만한 위치인 윙 브리지 끝쪽까지 나가 내려다보았으나 현등의 붉은색 불빛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브리지로 들어와서 스위치 보드의 항해등 표시판을 점검하니 엄연히 좌현 현등이 켜져 있다고 표시해주는 지시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3 항사! 아무래도 좌현 등이 꺼져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 봐라.
하고 말하니 겅중겅중 좌현으로 나가서 불빛을 확인하던 3 항사도 불이 꺼져 있다는 확인을 한다.
즉시 전기 담당인 3 기사를 불러 올려 체크하게 하니, 기관실의 항해 당직 중이던 3 기사는 자신의 기관실 부재를 채우기 위해 기관장에게 보고를 하였고, 기관장은 기관실 항해 당직을 대신 서기로 교대해주어 3 기사가 브리지에 올라왔다.
퓨즈를 비롯해서 전기적 고장이 날 부위를 열심히 찾아서 조사하던 3 기사는 드디어 좌현 현등의 불이 들어오지 않은 원인을 찾아내어 트러블슈팅을 해주니 다시 붉은 빛깔의 좌현 선등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앞에 나타났던 항행선에 대해서는 안전하게 우리 배와 지나쳐 가도록 순간순간을 확인하며 조선하는 것도 잊지 않고 진행하였는 데,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에겐 더 이상 항해등에 대해 이야기해줄 필요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