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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8. 2018

출항시간을 기다리며

번갯불에 콩 튀겨 먹는다더니

선적 예정했던 양의 화물을 모두 싣고 떠나는 배의 해치커버 위에는, 몇시간 전에 끝난 선적 화물이 석탄이라는 사실을 흔적으로 보이고 있다.

   

                

 발라스트 라인에 공기가 차서 잘 배출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당직사관과 하역담당인 일항사, 그리고 기관부의 일기사 들이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 모여 타결 방안을 상의하고 있는 모습에 곁들여서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6번 홀드에 실렸던 발라스트를 주 배출 라인으로 다 뽑았고, 마지막 바닥에 남아있는 적은 양은 빌지 라인을 통해 배출하려고 빌지 펌프로 바꿔주었는데, 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현장과 연락을 주고받는 워키토키의 통화음이 소음 마냥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게다가 발라스트를 다 배출하였기에 잠가 놓았던 탱크 속으로 넣어주지도 않은 해수가 슬며시 역류하여 들어와서 다시 발라스트 양을 늘여 놓고 있어, 배출 라인을 점검하며 다시 뽑아내려는 작업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저런 발라스트와 관련된 일로 바쁜 와중인데 검역관이 승선하여 자신이 체크할 일인 입항 전 대양에서 발라스트용 해수를 교환해 준 작업이 적법하게 시행되었고, 서류로도 제대로 작성되어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려고 방문하고 있다.  

            

 이러구려 잠시도 틈을 안 주며 발생하는 이런 일들은 항구에 도착하여 입항, 접안 작업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선적 작업과 더불어 늘어나는 화물 양만큼 숨이 차듯 바쁘게 발라스트(평형수) 배출을 해주며 엮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주부식 선적 오더를 내었던 멀리 글래드스톤에 있는 선식 회사가 보내 준 부식물까지 전 선원이 동원되어 무사히 싣고 나니 한바탕의 북새통을 빠져나온 것 같은 심정이다.     

       

 화물을 예정했던 양 대로 싣지 못할까 봐, 또 발라스트 운용 관계를 잘못했다고 관할 당국으로부터 지적당하여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아울러 회사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는 일까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식의 기우에 빠지다 보니 너무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지만, 승선했던 검역관이 자신의 일을 마치고 본선을 떠나면서 무사히 끝나고 있다.


 이들 모든 작업은 빨리 정확히 닥친 순서대로 계속하여 해결해 줘야 하는 일들이었고 어느새 최종 목표인 선적 작업마저 마치고 만조시의 출항을 기다리는 형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선박 내 모든 일의 책임을 안고 있는 선장의 직무를 보조할 수 있도록 화물의 적 양하 작업을 지휘 감독하는 일은 본선 일항사가 하도록 직무 분담이 되어 있건만, 사람에 따라서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선적 관계 일을 선장에게 일일이 보고 해가며 일하려는 일항사도 종종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 내려가게 되면 하루 중 처음 만나는 때이니 어지간한 일들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처리해주고, 선장이 꼭 알아서 조치할 필요가 있는 일들 외에는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으면 바라고 있건만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보고를 하니 그로 인해 쌓이는 스트레스도 보통이 아니다.              


 거기에 당하는 일마다 이유가 많고 힘들어 죽겠다는 식의 엄살과 입만 벙긋하면 불평같이 토해내는 레퍼토리인-임시로 우리 배를 탔다고 선언하고 있는- 그의 듣기 싫은 푸념 섞인 부정적 시각의 행동양식이 자주 짜증을 유발하였던 모양이다.

             

 이제 짐도 실을 만큼 양을 늘여 실을 수 있었고 모든 게 무사히 끝이 나 있는 상태로 출항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은 편안으로 가지만, 그렇게 안달(?)하던 심정의 끄트머리가 조금은 남아 수그러들지를 못 했는지, 출항 상황이 편안하게 아무런 일이 없이 진행되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이 새로이 들어서고 있다.


 결국 내 일에서는 항해하는 시간만이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선내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선장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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