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r 07. 2018

에어 드라프트(Air Draft)

광탄선의 입항 전, 제일 먼저 챙기는 숫자. 

브라질의 한 석탄 수출항구로 육지로부터 석탄을 실어 나오는 구조물이 다리 모양으로 보이고 있다


  심 흘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광탄선의 선적을 용이하게 위해서는 수심이 충분한 외해에 접해 있는 해안가에 인공 구조물을 세워서 접, 이안 설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금 부두라고 접안하고 있는 곳의 실상도 외해와 맞닿아 있는 곳인 육지로부터 4~5마일 떨어진 해안가 가운데에다 파일을 촘촘히 박아 돌핀을 세워 만든 곳이기에, 외해 쪽에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밀려와 그 영향을 받으면 묶여 있는 배가 돌핀부두에 대해 흔들거려야 하는 상태가 종종 발생되는 것이다.  

               

 단지 이곳이 평소에는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 아니고 수심도 적당한 곳이라는 지리상 이점을 살려 세워진 부두이기에 그런대로 사용 중인 것이다.    


  이제는 어지간한 배의 흔들림에 대해선 눈으로 보지 않고도 몸이 먼저 느끼도록 신경이 길들여져 어언 40여 년을 엎치락뒤치락거리며 살아온 해상생활이다. 

            

 다른 항차 때보다도 더욱 발라스트 배출에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빠듯하게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스케줄이 우리 배를 꽁꽁 묶고 있는 이 마당에 일항사 마저 교대해서 새로이 승선한 사람인 관계로 혹시 일에 차질을 내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에 자주 창 밖을 내다보며 알게 모르게 체크하는 심정이 되어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 마자 커튼을 들치고 내다봤을 때 아직도 6번 선창에 짐을 싣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니 홀드 발라스트 배출도 아직 끝내지 못했음을 짐작하겠다.  

            

 그래도 잘 진행되겠지 하는 믿음에 기대를 넘기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비몽사몽 간을 헤매다가 창 밖이 훤하게 날이 샌 느낌에 벌떡 자리를 차듯이 일어났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어 선수루 갑판의 FLOODING LIGHT의 수은등 불빛이 희미하게 보일 둥 말 둥 할 정도로 어둡게 만들고 있건만 사실 날은 이미 새어버린 참이다.

              

 광탄선을 오랜 기간 동안 타고 있던 내 이력에서, 여러 번에 걸쳐 계속 찾아와 봤던 이곳이지만 이토록 안개가 자욱하니 끼어 준 상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헌데 이런 안갯속에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바로 창틀 앞에 버티고 서서 9번 선창에다 석탄을 마구 쏟아 붓고 있는 UNLOADER의 SPOUT 모습이 슬금슬금 창틀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로더가 저렇게 움직이다니 문제가 큰데 하며 자세히 살핀다. 그것은 언로더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별로 보이지도 않는 너울에 노출된 우리 배가 살짝궁 꼼지락거리는 상태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것 때문에 가만히 있는 언로더(하역기)가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려고 한 그 잠깐 사이에 어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어선다. 된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한번 움찔해주니 평상 심으로 돌아오며 어지럼증도 개선된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배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짐을 싣기 전에 배의 높이가 너무 높아 있으면 갑판상 해치 코밍이나 커버에 있는 구조물이 언로더와 부딪쳐서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발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짐을 선적하러 들어오는 배는 최소한 -수면 상에서부터 어느 정도까지의 높이-즉 AIR DRAFT를 가지고 들어오도록 흘수를 제한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적 작업을 하는 언로더의 몸체에 부딪치게 할 정도로 본선 선체의 구조물이 높아 있으면 안 되니까 공선으로 인해 흘수가 낮아 배의 건현이 높아지는 걸 막도록 발라스트를 어느 정도 넣어서 건현 높이를 낮춰줘야 하는 것이다.              


 선적항에 입항하기 전에 항만이나 하역회사 당국은 자신들의 부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제한사항을 본선에 알려주며 선체 구조물들이 수면에서 얼마 이상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통보해주곤 한다. 이렇듯 접안 전에 미리 건현의 높이를 그에 맞춰 들어오도록 통보해주는 이 높이를 AIR DRAFT라고 하는 것이다.    

          

 이곳 헤이 포인트의 에어 드라프트는 유난스레 낮은 편으로, 작업을 빨리 끝낼 욕심으로 발라스트의 배출량을 미리 많이 하고 접안할 경우 언제나 이 규정에 걸리게 되어 작업을 거부당하여 다시 발라스트를 넣어 맞춰주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              

 별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는데도 배가 흔들리고 있는 걸 보니 높이가 서로 상충할 경우 로더의 스파우트 끝단과 배의 해치 코밍 간에 접촉이 일어나 양쪽에 파손 등의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에어 드라프트의 규정은 시즌의 파도에 따라 그 높낮이를 조금씩 더하는 경우도 가지고 있기에 오늘같이 날씨가 좀 궂은 날이 많은 계절에는 더 늘어나 있는 것이다.

             

 그 규정이 선박이나 항만의 안전을 위해서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항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짐을 실어야 하는 본선의 경우에는, 발라스트 배출에 제한을 주게 되는 펌프의 컨디션 저하 등을 염려하여 접안 전에 될수록 많은 양의 발라스트를 뱉아낸 후 들어서고 싶은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발라스트 배출량이 선적량에 뒤지는 경우, 그 타개책으로 짐 싣는 작업을 일시 중지시킨 후 발라스트를 적당량 배출하도록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럴 경우의 사용된 시간은 본선의 귀책사유로 떨어지게 된다.   

           

 이런 <시간=돈>이 되는 작업 진행에서 손해를 덜 보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적 전인 부두 접안 시에, 미리 발라스트의 배출량을 가능한 최대로 늘인 공선 상태로 접안되도록 준비하는 일항사와 상대역인 하역회사 책임자는 숨바꼭질하듯이 서로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선은 <을>이오, 상대방 항만은 <갑>이란 위치의 계약자 관계이므로 본선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줄다리기하는 마음으로 상대방들과 타협해 가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아리 없는 야호! 를 부른 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