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없으면 괜히 심통부터 부려보건만...
집안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엊저녁도 이멜 열어볼 때는 두 개의 편지가 와있어서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오픈해보니 일기사와 삼항사한테 온 거였어요. 기다린 보람도 없이 또 하루가 지난 것이 서운할 뿐이 외 다.
산뜻하니 즐거운 산행에서도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없는 야호! 하고 소리쳐보는 것 같이 맹숭맹숭 한 일도 없는데, 내가 그 꼴이 난 게 아닌가 싶어 뵈네요.
이미 열 번의 소식을 띄워 보냈건만 당신한테서는 딱 한 번만의 답장이 왔으니 해도 너무 했던 거라 생각지 않으세요? 열 한 번째 편지를 또 보냅니다. 어쨌든 사랑하니까~~~.
하지만 내가 진짜로 제일 겁내고 있는 것은, 당신이 간단한 편지조차 쓸 수 없는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편지 안 보낸다고 안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며,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기야 <사랑은 주는 것>이라니 열심히 보내는 내가 떳떳하기야 하겠지만,ㅎㅎㅎ 당신 역시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니다.>라는 걸 믿는다면 내 심정을 이해하고 짧은 말 한마디라도 보내주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지금 이 편지는 오늘 저녁 부두에 접안 한 다음 내가 집으로 전화해서 당신의 사정을 확인하게 되면 보낼 필요조차 없어질지 모르지만 지금의 심정으론 그래도 보내려고 한답니다.
엊저녁 드디어 오징어 회를 맛봤습니다. 훼방꾼이 다시 돌고래 한 쌍으로 되돌아갔지만 그 와중에 서 너 마리의 오징어를 낚아서 회를 친 것이죠.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고 썰었는데, 마치 하얀 묵을 국수같이 채 썰어 예쁘게 담아 내온 것 같은 회 접시를 대하며 오랜만에 소주 한잔도 곁들여 잘 먹었습니다.
맛이 담백하면서도 약간 꼬들꼬들하고 끝 맛이 달착지근한 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 싱싱하니 입맛을 당기게 하더군요.
-이렇게 오징어회도 맛보니 낚시도구들 산 거 본전은 뽑았지요?
우스개 소리같이 이야기 하는 기관장에게,
-무슨 소리야, 진짜 본전이야 뽑았지!
지난 항차 포항에 기항했을 때, 구룡포까지 가서 낚시 바늘을 사던 기관장 모습을 떠올리며 장만해준 회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장은 그걸로 파장을 해버리고 배 주위로 환하게 켜진 불빛이 퍼져 나가는 수면을 누비고 다니는 돌고래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관람객이 끊어진 야간 수족관에 들렸다가, 대낮에 해주던 화려한 돌고래 쇼를 조금이라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몰래 훔쳐보듯이 두 마리의 제멋대로 움직이는 돌고래를 관람한 거죠.
열심히 관찰해 본 후 내려진 품평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훈련 받아 행하는 돌고래 쇼보다 야 볼거리는 없지만 제 흥에 겨워 거리낌 없이 행하는 돌고래의 자연적인 모습의 운동은 그런대로 볼만한 것이다.라는 결말을 내면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내가 한숨 푹 자고 나서 새벽 운동을 시작하려고 갑판에 내려갔을 때까지도 녀석들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놀고 있었는지 계속 배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수면 가까이 떠오르며 숨소리를 뿜어내니, 어둠 속의 갑판을 돌고 있던 신경이 순간적으로 놀라 멈칫했죠. 그래서 핸드레일을 꽉 붙잡고 수면 쪽을 내려다보니, 우리 배 주위가 자신들의 영해라는 걸 뻐기듯이 설치고 다니는 돌고래의 숨을 내뿜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천천히 주위를 살피니 엊저녁 옆에 투묘 중이던 배가 안 보이네요. 밤새 부두로 들어간 모양으로 오늘 밤 우리 배도 부두에 접안한다는 예정이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편지 쓰기를 잠깐 접어 두었다가-
1740시에 도선사가 헬기로 승선하였다. 이어진 움직임으로 1830시에 부두에 접안하고 난 다음 대리점이 갖고 온 본선 선원들을 위한 전화기 설치가 끝나자 마자 제일 첫 번째로 사용하여 집으로 전화를 걸었답니다.
언제 들어도 즐겁고 명랑한 당신의 독특한 목소리가 나의 호출에 응답하는 기쁨을 가지며 그동안 마음속 가득했던 걱정 근심을 모두 날려 버렸습니다.
이멜 편지의 전달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이미 발송한 편지들이 도착하지 못했던 거지 편지를 못 쓸 이유가 생겨 안 한 것이 아녔던 것이다.
그렇게 밀렸다가 나타난 편지를 곰곰이 읽어 본다.
보이소
말매미 참매미도 아닌 쓰르라미가 목청 높이어 기승부리고 있는 한낮입니다. 따가운 햇빛에 눈이 부시다 못해 시려오고, 저녁이면 갖은 풀벌레 소리가 더욱 잠을 설치게 만듭니다.
참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걸 다시 한번 느껴 봅니다. 왜냐고요? 나는 받기만을 좋아하고 주는 것은 더뎌하는..... 애들 보고 매일 열어 봐라 아빠한테 편지 왔냐 하면서 나는 보내지도 않고 안 그래요?
우리 모두 건강하고요. 어머님과 나가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와 당신 편지 읽어보고 이렇게 편지를 적어봅니다. 휴가는 어떻게 보낼까 동생이 고향 갈 때 그 차로 엄마한테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기관장님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며칠 전에 전화 한 통하고는 편지 보내도 연락이 없어 궁금하다고 기관장 집에서도 소식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 좀 해 달라고 하네요. 이러는 나는 당신께 미안 하지만요. 그래도 우리 걱정은 마셔요. 더위에 짜증도 나지만, 당신께서 보내신 편지 중에 요즘 한창 유행하는 호텔식 방갈로 나도 생각 많이 해 보았답니다. 당신과 입 맞추어 이야기해 봅시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마음속으로 몇 백 몇 천 가지의 일을 날마다 하면서도 정작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이 몸이지만, 획기적인 일이 곧 생기고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보이소 항상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옵소서.
보이소 여편네.. BB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