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비상상황이 곁에 있는 생활?
어제 출항할 때까지 계속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기미가 남아 있어 무슨 일이 발생하려고 이러나 하는 우려 섞인 초조감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 하려고 했다.
항내 파일럿과 하이드로-그래퍼 파일럿 두 사람이 각각 승선하여 출항을 하면서도 언짢은 듯한 기분에 최대로 조심하며 조그마한 소리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즉시 귀를 쫑긋하니 세우게 되며 무슨 일인가 확인하느라 바쁘기만 한 심정이다.
드디어 항내 파일럿이 무사하게 배를 부두에서 떼어낸 후 헬기로 하선하였기에 이제는 외해를 향해 달리기를 계속할 외해 파일럿(하이드로-그래퍼 파일럿)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배의 엔진 알피엠(RPM)이 떨어지면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예, 브리지입니다.
3 항사가 급하게 응답해주며 수화기를 건네 준다.
-여기서 엔진 세울 수 있습니까? 엔진 고압 파이프가 터져서 기름이 막 흘러나옵니다.
귀에 댄 수화기 안에서 다급한 기관장의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 당장은 곤란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배가 얹힐 수도 있는 곳인데....
주위를 살피며 걱정스러운 답을 해주니
-기름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 안 되겠어요.
기관장의 목소리가 더욱 다급 해졌다.
-그럼 고압 파이프를 바꾸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급박한 상황을 같이 감지하며 물으니
-한 10분이면 됩니다.
그냥 되돌아오는 대답에,
-알았어요. 그럼 10분 안에 끝내도록 해봅시다.
비상 투묘도 생각하며 일단정지를 허가해 준 후 SEA PILOT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10분 안에 고친다고 이야기하니 알았단다.
곧이어 기관을 정지시키고 작업에 들어가니 도선사는 헤이 포인트 VTS에 간략하게 보고를 한다.
초조한 마음 되어 초침을 헤아리는 속에 전진 타력이 아직도 타효가 남아 있는 형편이라 기대 하지도 않은 시간인데 갑자기 엔진 텔레그라프의 소리가 울려 나온다.
기관실에서 스톱에 놓여 있는 텔레그라프 눈금을 데드 스로우 어헤드 엔진의 오더를 받으려고 올려줘 온 것이다. 10분은커녕 6~7분 정도만에 수리가 끝난 것이다.
곧이어 수리가 끝났다는 보고와 함께 계속 기관을 전속으로 올리겠다는 기관장의 전언을 들으면서 그때까지 계속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 같이 남아있던 이상한 불안감이 활짝 개이며 이제 무사한 안전항해가 이뤄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선다.
아~ 이런 일이 생기려고 그렇게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구나! 이곳에 도착하여 출항할 때까지 계속 따라다니던 이상한 예감은 여기서 끝이 났다는 확신을 가지며 한 숨을 돌려준다.
그래서 집으로 편지를 보낸다.
보이소, 며칠간 가졌던 긴 불안감에서 탈출하여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잘 달리고 있습니다.
HAY POINT에 입항할 때부터 생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 나를 쫓아다니어 매시간이 힘든 과정이었답니다. 대리점에서 연락 온 선적 예정 작업마저 좀 과할 정도로 빨리 끝나는 거로 잡혀 있어 실행 불가능해 보이던 스케줄이었건만, 결과는 오히려 예정보다 먼저 끝내 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뭔가 모를 불안감은 계속 나를 짓눌렀고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생길 때마다 이일 때문에 그랬던 건가? 하는 생각을 되풀이하곤 했답니다.
만나지는 일들이 소소한 일일지라도 그런 일들이 계속될 때는, 반드시 치러 내야 하는 큰일인 석탄 싣는 하역작업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사안들이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빨리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 한 셈이죠.
결국 두 항구를 방문 사흘 간에 걸친 접안 속에 하역작업을 모두 마치고 출항을 위한 고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는 불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무사히 잘 끝났음을 기뻐해야 할 텐데 아직도 마음속 어딘 가에는 불안감이 계속 남아 은근히 조바심이 나더군요.
저녁 고조 시간에 맞춘 출항을 위해 외해 파일럿과 내항 파일럿 모두 미리 승선하였고 드디어 고조시간이 다 되어갈 때 내항 파일럿의 조선 아래 배는 부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내항 파일럿은 헬리콥터로 하선하니 <아! 이제 무사히 출항하게 되었구나> 하는 좀은 안심이 들은 안도감을 가지게 될 무렵이었죠.
아직 30분 이상 더 밖으로 나가야 저조 때가 되어도 안전한 수심이 확보되는 곳에 도착할 즈음인데 갑자기 전화벨의 울리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더군요.
전화를 받았던 3 항사가 서두르며 나에게 전화기를 넘기며 기관실에서 왔음을 알려줍디다. 기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기관실 주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큰일은 아니지만 기관을 정지하고 손을 봐야 하는 일이기에 여기서 세워도 괜찮겠냐고 묻더군요. 순간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형편임을 감지한 것은 알피엠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오래 걸리면 배가 얹히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요.
하고 이야기한 것은 지금 세운 곳에서 수리하는 시간이 한두 시간 이상 걸리게 되면 물이 썰물로 빠져나가면서 수심이 줄어드니 배가 그 자리에 얹힐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이야기였답니다.
-한 10분이면 됩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기름이 계속 많이 흘러나온다는 다급한 표현이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서 얼른 도선사에게 이야기하고 배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도선사는 앞으로 열 시간 정도 우리 배를 몰고 산호 섬 사이를 빠져나가기로 계약되어 승선한 할아버지인데 머리가 벗어진 예순 대여섯의 이미 정년퇴직한 영감님이 다시 나온 거죠.
나와는 이곳을 드나들며 벌써 세 번째 만나는 안면이 있는 분인데, -왈 우리 배도 자기를 닮아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터지는 모양이라며 10분 정도라면 괜찮으니 어서 세우고 수리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기관은 이미 정지할 수밖에 없도록 바쁘게 회전수가 떨어졌죠.
말이 10분이지 더 이상 지체돼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을 만나니 초조히 시간을 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한 6분 지났을까요, 엔진을 써 달라는 신호가 따르릉 울려 오더군요.
기쁜 마음으로 즉시 텔레그라프를 응답해주니 엔진이 가볍게 걸리며 잠시 후 알피엠도 슬슬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전화가 다시 오면서 어둠 속에서 안도의 기색이 완연한 느낌인 한결 느긋해진 기관장의 목소리가 무사히 수리를 끝냈다고 전해 오더군요.
바로 그 전언을 듣던 순간, 며칠째 내 가슴속에다 강제로 묻어두려 애쓰면서 결코 꺼내지 않으려 노력했던 알 수 없었던 불안감들이 싹 씻겨지며, 이 일이 생기려고 그랬던 것이었구나! 하는 결론에 마음마저 편안해지더군요.
배를 타고 있는 동안에 이렇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셈이면 알 수 없는 불안한 예감이 미리 찾아와서 은근한 고민에 빠져 드는 경우를 종종 만들어 주곤 하는데 요 근래는 참 오랜만에 있은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