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일-진인사대천명
열세 번째 편지를 보낸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난 것 같아 내가 너무 무심했나 생각하다가 손꼽아 헤아려 보기도 전에, 겨우 만 하루가 지났는데 그런 마음 들어?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그래도 기분에는 제법 오래 지난 것 같은 건 순전히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심정 때문에 느껴진 상대적인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말라 하며 애타게 계속 기다리 느니 잠시 기다림을 접어두고 내가 먼저 써서 부치기로 작정합니다. 왜냐고요? 당신을 무조건 사랑하니까! 가 첫 번째 이유이며, 더하여 요 며칠 당신이 받고 있을 심적인 고통이 매우 괴로울 거란 짐작이 들어 위로를 해주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요.
장모님의 환후는 어떠하신 지요? 식사는 그런대로 잘 드시고 계시는지요?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쇠약해지는 몸 따라 마음 마저도 여려 지시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저께 청원의 기도는 장모님의 건강을 원하는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장모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라주는 것이 당연한 자식의 도리이겠지만, 만약 그 원하시는 것이,
-자식들에게 눈치 보이기 싫고 또는 폐가 된다고 생각하고 계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우선적으로 의사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어쨌건 이런 힘든 경우를 당할 때 같이 돕고 해결할 수 있는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조금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나누고 힘을 합치면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는, 많은 착한 형제자매들이니 결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봅니다.
따지고 보면 당신의 형제자매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분이시고, 또 타성인 우리들에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라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로 만들어 주신 분이 신데 어찌 조그마한 현실의 편함이나 이익에 취해 자식을 생각하시는 그러한 어머님의 깊은 속내를 모른척하니 외면해가며 은근슬쩍 넘기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사가 마지막 방법으로 처방하는 수술을 따랐을 때의 결과와 따르지 않고 지났을 때의 결과를 비교하여 어떤 점이 환자 본인에게 가장 나은 바람직한 일인가를 냉정하게 짚어보는 사람도 또한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누군가 당신들 형제 중 최소한 한 사람은 그런 악역 아닌 악역을 맡을 사람이 나와야겠지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나서야 할 사람을 대하는 나머지 우리 모두의 눈길이 결코 그 사람이 행한 행동과 태도를 두고 질시나 불신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요. 왜냐하면 그런 힘든 역을 맡은 사람도 지금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피를 우리와 함께 나눠 받아 태어난 우리의 형제자매이니까요.
솔로몬 왕의 이름에서 따왔을까요? 지금 솔로몬 해를 빠져나가는 마지막 입구를 향해 달리는 배 안에서 별로 솔로몬의 지혜를 닮 지도 못한 이야기로 당신을 번거롭게 힌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판결이라는 아기를 가운데 둔 두 어머니의 다툼에서 아기를 칼로 베어 나누어 가지라는 솔로몬 왕의 판결에 실제의 엄마는 승복치 않았지요. 바로 -그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때문에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 한가운데 사랑과 믿음을 심어 나눠 가지고 장모님의 환후를 함께 이겨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뒤죽박죽인 게릴라 닮은 날씨에 기죽지 말고 건강하세요.
항상 당신과 우리 가족 모두를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당신의 남정 네가
보이소
비가 멎고 밝고 맑은 햇살이 오랜만에 보는 태양이라 더욱 눈부신 하루였습니다.
요즘엔 날마다 엄마 드릴 좁쌀 죽을 끓여 가져다 드립니다.
엄마가 이 손을 꼭 잡고 왠지 놓치기 싫어하시는 것 같아 뿌리치지 못하고 매일같이 동생 네로 가져갑니다.
괴로워하시는 엄마를 보고 어떻게 해드릴 수도 없고 마음만 아플 따름입니다. 수술을 권해 보려 해도 긴 회복기간과 그 고통, 그렇다고 그냥 지금처럼 고통스럽게 바라만 보아야 하나. 이럴 땐 정말 할 말을 잊고 맙니다.
오늘은 동생네 가서 드실 죽을 끓여 놓고 엄마 목욕시켜 드리고 4시경에 집에 왔지요. 요즈음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 자식이 아플 때는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하고 함께 기도했는데, 나를 낳아 주신 엄마한테 그렇게 못하고 집에 와서 편하게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니 '그래 자식은 아무 소용이 없구나.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자식의 아픔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데, 자식인 나 자신은 부모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잖아요.
이런 내가 싫어 지기도 하는데, 엄마는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하느님 곁에 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빨리 갈 수 있게 기도해 다오! 하신답니다.
그러시는 엄마를 보곤 엄마가 안 계시면 나는 고아가 되잖아요? 하고 우스개 소리로 말씀드렸지만 정말 이 순간도 마음이 허전 해집니다.
보이소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 열심히 드리려 합니다.
당신 편지 고맙고 이 밤 세 놈하고 야. 엄마 맥주 한잔 사주라 했더니 서로 돈을 걷어 -큰 놈, 둘째 막내가 안주거리와 맥주를 사 들고 와- 지금이 새벽 세시 한 잔 씩 하고 자기 전에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 마음 쓰지 마세요. 모두 잘 될 겁니다. 살아 계신 동안 얼마나 잘 해 드려야 할지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이번엔 조금 우울한 소식뿐이군요.
다음번엔 당신께 좋은 소식 드리게 될 겁니다. 사랑을 모아서 당신 마누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