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고, 큰일 아니니 안심해요.

by 전희태
SNB10059(2655)1.jpg 사람들의 감정을 착잡하게 침잠시키는 역할도 하는 황혼 놀이 찬란한 저녁 바다



엊저녁 무렵, 통신실에서 이멜 전송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래 층의 내 방에서 선내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기에 하던 일을 대충 챙겨 놓으며 얼른 방으로 뛰어가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를 드는 순간 통화음이 그냥 끊어져버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던 누군가 전화가 빨리 연결되지 않으니까 그냥 끊었던 모양인데, 누가 무슨 일 때문에 접속하려 시도했던 전화였을까? 궁금함에 브리지로 전화를 걸어 봤다. 전화를 받은 삼항사의 전언이 방금 기관장이 나를 찾는다고 브리지로 전화를 했었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 일까? 이 시간에 나한테 연락해야 할 전화라면 내용이 별로 좋은 쪽은 아닐 것이란 예감이 퍼뜩 떠오르는 그때 전화벨이 다시 울려온다. 

-여보세요, 선장입니다.

얼른 수화기를 들면서 응답하니,

-기관장입니다.

하는 대답과 함께,

-1호 발전기에 이상이 발생하여 콘넥팅 롯드와 동 볼트 2개가 부러지고 크랭크 참버 블록이 깨어져 회사에 빨리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설명되는 내용이 발전기 부품들의 전문적인 용어라 완전한 이해는 그렇다해도 하여간 이번 항차 국내에서 부품의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대체품으로 바꿔 넣어준 중국제 콘넥팅 롯드와 볼트가 재질불량으로 인해 파손되면서 그 조각들이 발전기 내부를 휘젓게 되어 복합적인 좀 큰 사고로 발전한 상황임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기관장은 잔뜩 주눅들은 목소리로 기도 안 찬다며 이런 사고를 맞게 된 현실이 괴롭고 억울하고 하여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착잡한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 모양임을 전화선 넘어로도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



사실 이번 항차에도 열심히 사전 점검도 해가며 살펴보았고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하였던 건데 그렇게 일한 보람도 없이 사고가 떨컥하니 났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억울함이 우선 힘든 것 같아 보였다.



본선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보려고 수리 일을 시작하지만 결과가 별로 탐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몇 가지의 현실이 또한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이 사고가 요 며칠 사이 나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던 이상한 불안감이 미리 알려 주려 했던 그런 사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형편이 나로서는 그나마 조심스러운 안심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이 일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란 나의 선견지명(?)을 믿는 마음이 생긴 점은 실제의 결과로도 그렇게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무슨 일이 생기려면 그전에 이상한 전조증상 같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감정이 생겨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수시로 표출되곤 하였고, 반면에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도 그 결과가 좋으려면 걱정이 별로 안 되는 분위기도 또한 있다.



특히 이번 일의 발생 전에는 그런 초조감이 없었고, 또 사고 발생 보고를 들었을 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점으로 봐서 더 이상의 후유증이나 나쁜 일들은 없을 것이란 확신이 섰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나의 이런 이상한 능력(?)에 대해 이미 듣고 있던 기관장과 일기사에게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기분을 이야기해주고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줄 때가 된 것 같다. 

마침 기관장이 선단 담당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보고를 하였을 때에도 위로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나는 기대했었는데, 마침 전화를 받은 팀장인 J부장도 역시 질책성의 이야기가 아닌 긍정적으로 현실을 보살펴주며 수리를 위해 취해야 할 일들을 짚어주는 언급을 하여 주었단다. 


한시름 덜어낸 듯, 많이 밝아진 표정을 짓는 기관장에게 나도 이번 일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나의 예지 능력(?)을 은근슬쩍 흘리면서 안심하도록 다시 한번 더 거들어 주는 말을 하는 때에, 내일의 맑음을 예고 해주는 저녁 노을이 찬란한 빛의 향연을 베풀며, 응원해주듯 하루를 마감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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