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오래 건강히 사셔야 합니다
보이소
전국에 비 피해가 대단합니다. 낙동강 유역은 곳곳에 둑이 무너져 농지가 잠기고 길이 막히고 기차까지 다니지 못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고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소, 돼지, 닭들이 물 위에 떠내려가는가 하면 구조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어 대는 사람들 …
큰애는 월요일부터 출근할 것인데 자알 견뎌줄지 걱정이고 막내는 둘째의 회사에 8월 말경 출근할 예정이라고 했고 막내 고모네도 내일 이사한답니다.
엄마는 8월 10일 중앙병원 응급실로 가셔서 저녁에 2인실로 들어가시고, 월요일 교수 회의해서 수술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저번에 수술을 하였더라면 지금까지 고생 안 하고 벌써 회복을 했을 것을 하고 후회도 합니다.
어제 이 말씀 저 말씀하시는 데 유언을 하시려 나 했더니 자기 준비를 하시느라 고향 수도에 가셨던 것이라 말씀하시며, 그동안 꾸준히 모아둔 통장과 도장을 주시는데 돈이 병원비 다 하고도 남을 만큼이나 있더라고요.
마음이 아파 옵니다.
그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가 안 계신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진통제와 링거를 꼽고 계신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이던지… -엄마는 자기 생각 못하지. 엄마가 그러고 있을 때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지… -
그래요 연세가 80 이면 어떻고 90 이면 어떻습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만 준다면 그 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보이소.
한 이십 여일 몸이 피곤하고 힘이 들어 회사에 출근 안 하고 집에서 빨래도 하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드리는 생활로 회귀한 셈이 되었더니 어머님의 잔소리 성 참견도 많이 없어지셨답니다.
그래서 '그런 연세가 되시면 그런 일 마저 귀찮아지시는 거구나' 새삼 이해가 되네요. 요즘은 마음 상하는 일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러니 당신도 아무 걱정 마시고 건강하게 즐겁게 생활하세요.
운동도 중요하지만 너무 바닷물은 뒤집어쓰시지 마시고요. 아프지 말고요 엄마 보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뭐든지 먹어야 한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배가 아파 보세요. 먹을 수 있나. 내가 아팠을 때의 엄마 마음을 내 자식이 아파할 때 느꼈는데, 먹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또 한 번 느껴야 하니 곁에 계실 동안 우리 모두 잘 합시다.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한 분들이 신데……
내일 8시 반까지 병원에 가야 합니다. 회진 돌 때 만나 이야기 들어야 하니까. 열심히 기도해 주세요. 당신 장모님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해 봅시다.
보이소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 항상 즐겁게 신경질 내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며 삽시다.
2002년 8월 11일 당신을 사랑하는 마누라 BB
(위의 아내 편지를 받고 새삼 장모님을 처음으로 뵈었던 예전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가 말로만 전해 듣던 장모님을 처음으로 뵈었던 날은 1966년 9월 하순의 비가 내리던 어느 일요일 저녁때로 기억됩니다. 한창 선임 해군 소위로 군무에 몸담고 있던 시절이었지요.
모처럼 주말을 맞아 진해에서의 생활에서 하루를 벗어나 부산을 찾았다가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기생이 3등 기관사로 승선하고 있는 배가 마침 부산 중앙부두에 접안 중인 걸 알았죠.
반가운 마음에 아침 열 시경 그 배를 방문했다가 그날 한나절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었지요.
3등 기관사라는 선내 위계가 층층시하의 맨 끝 자리이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다음날 아침 출항 예정이었던 그 배 안에서 그는 끗발에 밀려 계속 정박 당직을 서야 했기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어도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이일 저 일로 계속 방을 들락거리는 바쁨 속에 있었죠.
마침 부식 선적이 끝난 후 당직자를 위한 서비스라며 선식에서 올려준 청주 한 병을 생 두부 한 모 위에 간장을 부어 만든 급조 안주 한 접시와 유리잔 두 잔 만을 내 앞에 벌려 주는 걸로 반가움을 표하며 그는 계속 자신의 일에 매달려 손님인 나를 방안에 둔 채 들락거리고 있었죠.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 어느새 점심때가 넘어가는데도 냉동기 일로 다시 바빠진 3 기사의 나타남을 더욱 뜸하게 만들고 었었다. 그러니 무료하게 기다리며 혼자 마시게 된 청주 1.8 리터 한 병은 어느덧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채 바닥이 드러나게 되었답니다.
마침 그때 당직 교대를 해 준다고 들어온 2년 선배인 그 배의 2등 기관사를 보니, 괘씸한 생각이 들어 사랑한다는 후배의 당직 시간을 정식으로 교대 안 하고 왜, 3 기사만 혹사를 시키십니까?라고 큰소리로 따졌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하극상(?)의 충격이 커서였을 겁니다.
그 선배는 그저 놀란 눈으로 쳐다만 보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니 군복은 입었지만 학교 때는 왕같이 모시던 하늘 같은 기수 차이의 선배 님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은근히 겁(?)도 나기에 그냥 <안전항해 바랍니다>하곤 부리나케 그 배를 나와버렸죠.(당시 선후배 간의 군기가 빳빳했던 해양대학 전통으론 있을 수 없는 히극상을 벌인 일이었다.)
그렇게 중앙부두를 물러나온 바깥은 구름으로 뒤덮인 우중충한 날씨로 변해 비까지 내려 있더군요. 진해 행 버스를 타러 <교통부 앞> 시외버스정거장을 향해 부두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 데 이대로 버스를 타게 되면 혹시 술 취한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더군요.
마실 때는 몰랐던 청주의 취기가 점점 더 엄습해 오는 느낌 속에서도 이대로 버스를 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술을 깨고 쉴 곳을 따져보다가 아하! 그 집으로 가면 되겠구나 최종 결단을 내려 정하였습니다.
아내와 연애 중이던 때로 정식으로 집을 찾아가 어른들을 뵌 적이 한 번뿐이었기에 어려울 수 있는 결단이었지만, 대취 한 몸으로 거리에서 추태를 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치기가 만들어 낸 결정이었다.
마침 버스터미널과 같은 방향이니 술도 좀 더 깨게끔 계속 걸어서 가기로 했답니다. 신암 쪽을 향한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길 복판에 빗물이 고여 있어 이리저리 움직여 피하는데 제법 잘 피하던 발걸음이 너무 먼 거리였을까? 펄쩍 건너뛴다고 했는데 그만 물구덩이 가운데로 구둣발이 빠졌답니다.
발을 통해 전달되는 감촉이 너무나 시원해, 기왕에 젖은 것. 그냥 저벅저벅 걷기로 했습니다. 어느새 소강상태였던 빗줄기마저 방울이 커지더니 금세 속옷까지 완전히 적셔 버리더군요.
어두워질 무렵이 되어서 그 집 문 앞에 도착했죠. 빗속에 들리는 인기척에 문을 열어주던 분은 물에 빠진 생쥐 꼴 같았을 내가 뭐라고 말하는 건 흘려들으시며, 저 큰손으로 내 딸 OO를 구박이라도 한다면 큰일이겠다. 는 생각만 하셨다죠?
그 정도로 제 손만 크게 보셨다는 장모님. 그건 한참 후에 아내를 통해 들은 이야기고 당시엔 이미 청주 한 되에 녹아버린 채 그냥 잠에 빠져버린 기억밖에 없답니다.
월요일 새벽, 저는 사랑하는 처자가 밤새 세탁해 빳빳이 다려준 옷을 차려 입고 진해를 향한 첫 버스 안에서 혹시 엊저녁 어머니한테 실수한 일이 없나를 꼼꼼히 따져보았죠.
그리 엮어진 장모님과의 인연, 소중히 되돌릴 때마다 그리도 철없던 시절을 고소를 머금어가며 회상하곤 한답니다.
장모님! 인생은 60에 시작이라니까, 이제 겨우 20대 청춘이 시네요. 그런데 편찮으시다니 안되죠.
사위 전서방이 그 큰 두 손을 모아 쥐고 천주 님께 간구합니다. 장모님의 빠른 쾌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