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어느 날. 배를 떠나던 날

승선 생활을 마무리시키려 찾아온 그 날

by 전희태
축하합니다2.JPG 정년퇴임을 하던 그날의 그방

1998년도에 새롭게 변한 회사 사규는 선장의 정년 연한을 62세에서 58세로 축소 확정하였다. 당시 원래의

62세 정년이 되는 2004년까지는 아직 6년이나 남아있었던 나는 아직은 심각하게 정년을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받아 든 느닷없는 정년의 축소 변환은 많은 불만과 불안감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는데 회사는 갑자기 정년을 맞게 되어 불이익을 받게 된 사람들 중 <58세가 넘어 60세가 되는 때까지 2년간 정년 연장(촉탁)을 시켜준다는 유보조항>을 만들어서 다시 이어지는 승선 계약을 가지게 배려(?)를 해 주었다.


그렇게 미루어 준 승선기간 마저 어느덧 채워져서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하선해야 할 때가 오늘 찾아온 것이다.

원래의 오늘은 책임 선장으로 타고 있던 DS호에서 2002년 12월까지 였는데, 본선이 그 무렵 국내로 귀항하지 못하고 외국 간 항해를 하고 있었기에 나의 하선은 자연스레 국내로 입항하는 때에 맞춰 그만큼 늦어져, 오늘 이곳 포항을 찾아오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 속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어 보였던 덧붙여 준 2년의 세월이었는데, 이렇듯 찾아 옮은 너무나 빠르게 다가와 <아니 벌써?>라는 노래가 저절로 새어 나올 판이다.


그동안 철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세월의 무서움을 몰라서였을까?

2년이란 세월을 많이 남은 긴 시간으로 착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던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입항하면 즉시 임무교대 후 연가 하선하는 일이 바로 내 눈코 앞에서 마지막 명예퇴직의 일정표로 차려질 거고 그런 포항 입항을 향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의 주어졌던 약속 기일은 작년 12월 초(내 생일 전후)의 하선이었지만, 본선의 좀 늘어진 국내항 입항 스케줄에 따르다 보니 해가 바뀐 한 달 후로 되면서 더욱 제 편한대로 그런 늘어진 느낌을 갖게 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와 다름없는 비슷한 컨디션의 마음가짐으로 포항에 입항하였지만, 지점에서는 꽃다발을 든 직원들이 찾아와서 간단한 인사말로 나의 퇴임을 축하하는 식을 준비해주어 비감한 마음마저 들게 해준다.


지나간 나의 반평생을 기리는 축하행사로는 (그건 내가 스스로를 자존 해보려는 몸부림치는 생각 때문이겠지만) 너무나 초라한 행사로서, 그 마저도 본사가 특별히 생각해주는 뭔 가가 있기에 가능한 행사였음을 알고는 있다.


교대 후임자에게 직무 인계를 해주고 간단한 꽃다발 한 개를 받아 들면서, 그간 해양대학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40여 년간 해상생활의 인연은 그리도 간단히 끝이 나고 있었다.


늘 있어 왔던 대로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았던 오늘들. 그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 역시 오늘 되며 변함없으리라 믿었던 날들이었건만. 내일부터는 이 생활과 멀리 등을 돌린 상황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새삼 믿어지지 않기에 그냥 멍해지는 기분 속에 승선 생활을 떠나가야 할 마지막 짐을 이 역시 마지막으로 가족 방선을 해온 아내와 같이 싸기 시작한다.


어느덧 다 쌓아 놓은 짐들을 밖으로 실어다 줄 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난 세월 나의 발길이 머물렀던 배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 올려 본다.


반도호, 205함, 902함, 제주호, 묵호호, 부산호, 여수호, 코리안 푸론 티어호, 목화호, 목야호, 한라 파이로트호, 대양 바운티호, 대양 하니 호, 그로 발의 순호, 그로발 선샤인호, 그로발 호프호, 팬코리아호, 오션 코리아, 오션 유니버스, 오션 퀸, 오션 뱅가드, 오션 마스터호, 대우 스프리트호,....


이름이 적힌 배는 최소한 일 년은 승선한 배들이고 몇 년 후 다시 탔던 배도 있는데, 각선마다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 배도 있음을 기억해 본다. 불이 났던 배, 인명 사고가 났던 배, 산호초 밭에 올라앉았던 배 등등... 게다가

서고가 난 배를 수습하러 숭선 한 임시 교대라던가 짧게 근무한 배의 이름은 기억에 떠올리기가 좀 어려운 형편이므로 이 외에도 몇 척은 더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황혼의선수2.JPG 마지막 항차를 북태평양에서 부터 마무리 해 오던 어느날의 날씨

차가 왔다는 전갈이 와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일어선다. 작별의 인사를 깍듯이 해주는 남아 있는 동료들의 손짓에 일일이 응답해주며 갱웨이 래더를 내려선다.

세계의 한 길목인 Cape of Horn을 지나다니는 걸 상징적으로 삼아 마젤란의 세계 일주하던 심정에 빗대어 알아보며 이루어 내리라 작정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현실이 표현하기 힘든 착잡함과 씁쓸함 되어 스스로의 비감함을 달래기 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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