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러 비행기로 날아가다
명예퇴직으로 승선 생활을 떠난지도 어언 4년여의 세월이 흘러간 형편이지만, 아직까지도 잠자리에 들어서면 예전 승선 때와 별다를 바 없는 꿈들을 열심히 꾸다가 깨어나는 생활도 버리지 못하며 2007년을 지나고 있다.
때마침 해운계 일각에서 퇴직자들의 경력을 고용에 참작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작심하며 재승선에 필요한 보충교육의 이수를 위해 2개월여의 기간을 부산 해양수산 연수원과 집을 오가며 열심히 수업과 훈련을 받았다.
이제 그렇게 준비했던 재승선을 위한 교육도 끝났고 취업도 결정되어 마지막 단계인 출국을 위해 집을 나서게 된 날이 되었다.
승선하게 된 배를 찾아가야 할 곳은 브라질이지만,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으니 둘러서 가는 파리 행을 타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경제적인 비행기 티켓을 찾으며 여행사를 이용하다 보면 중간 기착지를 여러 곳 들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지만 이번의 여행은 파리 한 곳만 걸치면 되는 방법이라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캐나다 밴쿠버를 위시한 여러 곳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로 만들어 놨던 예정이었는데, 너무 돌아가는 게 아니냐 고 함께 동승 발령을 받고 떠나게 된 기관장이 사전 건의를 하면서 그리 결정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부인이 운전하는 그 집 승용차로 우리 집 앞에서 도킹하기로 사전 기관장과 약속했던 떠나야 하는 날이 되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곧 비가 내릴 듯 한 기세가 유난스러운 흐린 날씨이다.
이른 아침 약속대로 우리 집을 찾아온 기관장네 승용차에 가지고 떠날 짐을 실어준 후 공항까지 배웅하려는 아내마저 동승한다.
가족 모두가 배웅 나와서 헤어지는 형편에서 모두들 할 말은 많지만, 할 말을 잊어버린 듯 하염없는 혼자들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드니 그냥 조용히 손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헤어진 것이다.
어제 오후 되어 급하게 연락 온 오늘 아침에 떠난다는 통보에 서운했던 마음도 모두 던져 버리고 이제는 떠난 후의 일에 맡은 바 책임을 다 할 것을 속으로 다짐하는 동안, 차는 잘 다루는 기관장 부인의 유려한 운전 솜씨 따라 강변 올림픽 대로를 타고 잘 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퍼부어지는 빗줄기는 장난이 아니라 그야말로 억수같이 쏟아져서 차창의 와이퍼가 최상의 빠른 속력으로 동작을 하면서도 미처 물을 훔쳐내질 못하며 숨 가빠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하여 달리고 있는 차체도 기웃 둥 거리는 느낌을 주어서, 빗속을 달려가는 형편이 마치 과속인 것 같아 보이지만, 운전기사로 나선 기관장 부인의 노련한 조심 운전의 덕분에 안심되는 마음이 들어선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차들도 모두 인천 공항을 가는 차들이니 평소 같으면 무섭게 달리기도 하련마는 날씨가 모두들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조심해서 달리게 하고 있다.
이런 모든 모습에서 이번 우리가 나가는 일이 그런 식으로 조심하여 일하라는 걸 강조해주시려는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며 다시금 마음속 다짐을 한다.
공항 터미널에 도착하여 우리를 내려주는 가족에게 야속하지만 그대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함은 비가 내리는 모습이 너무나 난폭해 보여 그 비를 뚫고 집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고 안전함을 되돌려 주고 픈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우리는 에어 프랑스 발매 창구를 찾아가는 일부터 시작한다. 지금껏 남들이 해 놓은 수속 환경에서 해 오던 모든 일들을 이제는 나 스스로 먼저 찾아내어 해결하는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른바 자립의 길로 들어 선 셈이다.
구불구불 늘어선 줄을 보고도 옆의 비어 있는 곳을 보고 들어섰다가 그곳이 줄을 서는 곳이 아님을 스스로 알아 다시 줄 선 사람들 끝으로 찾아가는 해프닝을 벌리다가 어느새 찾아온 세상사에 아둔 해져가는 내 나이를 서러운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마침 10시 30분에 파리로 떠나는 에어프랑스 기는 대한항공과도 연계하여 있다 기에 마일리지를 위한 신청도 해주었다. 그나마 마일리지 카드를 분실한 상태라서 내 정보만을 알려주고 쌓기로 한 점수이다.
보내는 짐을 X레이 투시기로 검사하여 이상을 발견할 시에 대비하여 5분 정도 그 옆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를 따라 10여분 그곳에 앉아 있다가 아무런 말이 없기에 자리를 옮기어 탑승자 대기실로 들어섰다.
앞으로 들고 다니는 짐이 귀찮아지는 일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런 제재 없이(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그곳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선다.
이곳이 면세 구역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스레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린다는 표현이 알맞게 인파가 흐르고 있음에 좀은 놀랍다. 그 인파의 반은 면세점에 들어가 있거나 그 앞을 서성이며 구경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외국으로 나가기도 전에 면세점부터 들리는 이 세태는 과연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 잠깐 머리에 스치는 의문이다.
그런 인파를 무시한 채로 우선은 아침식사 해결부터 하자고 음식점을 찾다가 간단히 죽집을 찾아들기로 했다.
곧 비행기 탈 몸인데 너무 위에 부담이 되는 음식을 들기보다는 간단한 요기로 끝내자는 뜻도 크지만 그 음식이 제일 싼 편에 드는 가격표를 가졌기 때문이다.
면세구역 안이니까, 음식도 그에 맞추어 좀 더 싸게 공급하면 안 되는 걸까? 오히려 비 면세구역을 웃도는 그 가격에 다시금 반발심이 들었지만, 죽은 그 안에서 빼 주기로 할 만큼 입맛을 채워주었다. 그러나 한 그릇에 7,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탑승하며 살펴본 파리 행 비행기이지만 안에서 만난 외국인은 드문드문 보이는 존재였고 거의가 내국인이다.
티켓 발매를 받을 때, 창가 쪽을 기피하면서 통로에 면한 곳으로 주문했었는데 그건 10시간여를 날아야 하는 비행 중에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일에 대비한 처사였다.
세 좌석 씩 세 줄로 된 좌석 중에 가운데 있는 좌석을 배당받았다. 화장실 출입에 처음부터 영향받는 일이 없도록 준비한 것이, 타고나서 곧 지내고 보니 얼마나 잘한 일이었든지~. 이는 기관장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한 오전 중에 떠난 비행기가 두 번의 식사를 대접해주며 10여 시간을 달렸다면 22시 30분쯤에 도착해야 하는데 현지시간은 14시 30분 정도였다.
원래는 우리와 일곱 시간 앞선 시간대를 쓰는 프랑스이지만 서머타임을 써서 여섯 시간 앞선 시간을 사용하므로 그런 시간이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야말로 열 시간을 더 기다려서 23 20분에 리오 데 자네이로를 향해 뜨는 에어프랑스기로 바꾸어 타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먼저 내렸던 드골 공항 F구역에서 E구역을 찾아 버스와 자동 전동차로 바꿔 타가며 우리가 환승할 비행기를 탈 곳인 E57 게이트임을 알고 찾아가니 이곳에서 다시 면세구역을 향해 들어가는 행사를 치러야 했다. 이는 그 목적이 보안에 중점을 둔 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벗어 보질 않았던 구두마저 벗고 컴퓨터도 꺼내어 서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공항 이름인 드골의 명성을 기억한다면 왁자지껄하고 인파가 넘치는 곳이 될 법도 하련만 쇠락한 시골장터 마냥 비행기가 나가는 잠깐 동안만 사람들이 줄을 서 보는 그런 장소였다.
그러나 공항의 대중 설비에서 화장실의 독특한 점을 본다. 남녀가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도 있고 아예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전용 화장실로 사용토록 한 것도 그 사이사이에 끼어서 설비되어 있다.
아울러 화장실에 설비된 화장대는 하얀 상아빛의 한 개의 통판으로 된 것으로, 네 개의 세면대를 그 안에 품고 있지만 아주 완만한 곡선으로 세면대가 파여 있어 그 뒷면 벽의 수도꼭지 두 개와 세면대 가슴에 품고 있는 배수 꼭지를 못 보면 그곳이 손을 씻는 곳이란 생각을 못하겠다.
그런데 그 앞에 서면 반겨주는 듯 저절로 물이 쏟아져 나오고 깜짝 놀라 엉겁결에 손을 씻고 평소의 습관대로 물을 끄려 하다가 아니지! 하고 물러나도 계속 물은 흘러나오고 있다.
좀은 어처구니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던 그 물은 잠시 후(그러나 생각은 제법 긴 시간 이 흐른 것 같다) 또 스스로 잠가지며 그 상황을 관찰하던 내 모습을 그 커다란 벽면의 거울이 오히려 관찰하듯 자세히 보고 있었다.
영락없는 서울 촌놈이 프랑스 파리의 드골공항 화장실에서 자동 수도꼭지를 처음 보며 느껴보는 잠깐의 당황감이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 공항 안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달라를 유로화로 환전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