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일상 승선 생활로 돌아오다

조류독감을 생각하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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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거리듯 발 밑을 따라 몸에 전달되고 있는 일정한 속력이 붙어 있는 엔진의 지속음이 그에 걸맞은 한 번씩 흔들림을 전하는 선체 진동과 어울리며, 최상의 상태로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끈하게 달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제 다시 바다로 나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편안한 항해로 돌아가 있음을 확인받는 이 분위기는 뱃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매력인 듯싶다.


이것저것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육지에서의 일 들로부터 온전히 놓여나서 그 누구의 방해나 간섭도 받지 않고 무연하게 달리고 있는 항해로 들어서니, 이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고 즐거운 시간임을 다시금 깨달아 본다.

AI(조류독감)의 공포(?)

오키나와를 지나쳐 내려오면서 나빠지기 시작한 날씨가 필리핀 동쪽에 그려져 있는 저기압을 의식하게 만들 어 태풍에 대한 겁을 심중에 은근히 떠올렸는데, 앞바람으로 불어 오든 바람이 비를 몰고 와 사정없이 뿌려주니 그 공포감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어제는 그래서 선창 청소를 하려던 예정도 취소하고 하루 놀리는 일과로 지냈는데 오늘 새벽 3시에 눈을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 공중 하늘에는 터키 국기 같은 반달과 별이 빛나는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태풍의 걱정에선 벗어난 형편임을 확신하며 새벽 운동을 위해 갑판으로 내려간다. 수평선이 희뿌옇게 밝아오며 여명의 환영행사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배는 발라스트 탱크 내부에 실려 있는 해수를 바꾸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발라스트 탱크(평형수 수조) 안에 가둬두고 있던 발해만 안에서 채웠던 혼탁한 바닷물 발라스트를 광활한 태평양에 들어서며 깨끗한 바닷물을 펌프로 퍼 올려 강제로 교환시켜주는 것이다. 갑판 위는 좀 뿌옇게 보이는 작은 시냇물이 양현 사이드를 따라 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선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선수 쪽의 흘수가 낮은 편이고 건현은 그만큼 높은 셈이라 물은 앞쪽 발라스트 탱크의 열린 맨홀을 빠져나오면 선미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가야 할 호주에 입항하기 전에 가지고 있는(실려있는) 오염이 됐을 수도 있는 발라스트 해수를 깨끗한 해수로 바꿔치기해주는 작업은 호주 당국에서 꼭 하도록 요청하는 일이라 밤새도록 계속 진행하며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수 쪽으로 옮겨가던 발걸음은 결국 이렇게 뿜어지듯 흘러나오는 열린 4번 홀드 발라스트 맨홀이 있는 쪽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신발을 적시지 않고는 그곳을 지나칠 수가 없어 보여 발길을 돌린다.

조심하며 4번 창과 5번 창 사이의 크로스 데크로 들어선다. 그리고 배의 폭을 가로질러 반대편 현에 도착하여 발걸음을 다시 선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결국 배를 한 바퀴씩 돌던 평소의 운동코스가 절반의 길이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라도 타협하여 배를 도는 횟수를 배로 증가시키며 계속 그 코스로 운동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렇게 세 번째 바퀴를 돌아가면서 우현 쪽 7번 홀드 옆 갑판에 이르렀을 때, 작은 시커멓게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저렇게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면 어떻게 하나……

선원들의 함부로 쓰레기 버리는 야속한 태도를 나무람하는 마음으로 나서며 살펴보려니 그건 버려진 쓰레기가 아니라 작은 새의 주검이었다.

순간 주워서 바다에 버릴까,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칫 돌린다. 저게 혹시 AI(조류독감) 에 걸려서 죽은 새가 아닐까? 하는 희박한 상황의 의심이 머리를 친 것이다.


계속 이어가는 발걸음 따로 머리 속 따로인 생각들에 휘몰이 장단에 놀아나듯 하다가,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크게 돌아 전국이 떠들썩했는데, 로 시작하여

-혹시 저 새도 그런 병에 걸려 있어서 날아가지 못하고 저리 죽은 게 아닐까?

-아니지, 예전에는 배에 와서 죽는 새들도 많이 봤잖아? 그러니 그런 새겠지 뭐.

-맞아, 배에서 저희들끼리 잡아먹는 놈들도 있었는데 뭐.

-어쨌거나 저건 그냥 그대로 배위에 놓아둘 수는 없는 거잖아.

-만약 호주에 가서 검역관이 보기라도 한다면 좋을 게 없지…

-그러니 더욱 치워야 하지 않아?

-그래 다음번 돌아가는 길에 치워버리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가는 길엔 예전 같으면 그냥 손가락으로 집어서 바다로 돌려보냈을 텐데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에 맨손이 아닌 집어서 같이 버릴 물건이 없을까? 살펴본다.


중국에서 인부들이 사용하다가 버리고 간 면장갑 한 짝이 마침 눈에 들어온다. 얼른 집어 든다. 어제 온 빗물 때문인지 아니면 발라스트 해수에 젖은 것인지 하여간 푹 젖어 있는 면장갑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새의 사체가 놓여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면장갑을 덧 씌워 주듯이 사체에 덮어서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후 갑판의 가장자리로 옮겨간다. 그리고 휙 잘 조준하여 바다로 던져서 돌려보낸다.


-네가 태어난 고장으로 다시 돌아가 다음번 태어날 때는 이렇게 가지 말고 좀 더 새다운 아름다운 마감을 할 수 있도록 하거라!

새의 주검은 그렇게 태평양의 한 모퉁이에서, 어쩌면 지구 상 가장 깊은 곳일 해구를 향해 사라져 갔다.

결코 조류독감에 걸려 죽은 새는 아니라고 강력하게 믿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개연성 때문에 조심해가며 치운 이유는 사실 호주에 입항하였을 때, 이런 조류의 사체가 본선 갑판상에서 검역관에게 발견이라도 되면 괜스런 검역상의 까다로움과 만날 수도 있다는 경험을 새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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