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묘 지로 내습하는 폭풍 피하기
어언 이곳 뉴캐슬을 찾아와서 닻을 내려주고 기다린 지도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건만 아직도 우리 배가 들어가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불청객인 폭풍이 찾아오고 있다.
어제저녁 때부터 슬금슬금 나빠지기 시작하던 날씨가 새벽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체면치레 볼 것 없다는 듯이 다가오더니 가만히 있는 선체를 슬금슬금 흔들어 주기 시작한다.
VHF 전화기에 들어오고 있는 배와 육지 간의 통화 내용이 점점 더 무거운 톤으로 변하고들 있는데 마침 어느 배가 사고 보고를 하고 있다. 즐거운 주말을 챙겨야 할 시간에 사고 보고를 하는 그 배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새벽 5시경 닻이 끌려서 감기 시작한 국적 해운 선사인 H해운의 H 로버트 뱅크호가 5 샥클까지 닻을 감아 올리고 난 후 닻이 떨어져 나갔다는 닻 망실 보고를 하고 있다.
어제 오후부터 나빠지던 날씨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밤을 지내며 계속 더 나빠지면 우리 배 역시 닻을 감아서 투묘 지를 벗어나 외해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품고 있던 중인데, 그 배의 사고 보고는 내 마음을 얼른 더 닻을 감아서 외해로 나가라고 부추기고 있다.
아침 식사를 끝내자 마자 즉시 준비를 시켜 8시 10분부터 닻을 감기 시작했다.
11 샤클을 내주었기에 한 시간 너머 걸릴 거라고 작정하고 시작한 양묘 작업이 4 샤클 정도 남았을 때 윈드라스 펌프가 트립되며 잠깐 정지를 한다.
얼른 기관실에 연락하여 손 봐주기를 청해놓고 그 기다리고 있든 순간순간의 초조한 마음은 참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4 샤클 온덱크까지 올라온 닻을 더 감자니 꼼짝 안 하고 그렇다고 내주자니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격이다.
다행히 왼쪽 펌프로 바꾸어 재 시도한 작업에서 힘겨워 하면서도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트립 되었던 우현 펌프도 수리되어 다시 작동하니 그간의 내 머리에 떠 돌던 극도의 불안감도 사라졌다.
마침 선수 정면 하늘에 당장의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무지개가 떠 오르면서 우리 배의 외해로의 피난(?) 장도를 괜찮다고 응원해주는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드리프팅을 위해 속력을 낮추어 움직이려니까 이미 피도 밭이랑이 되어버린 해면이 기다렸다는 듯이 덤벼들며 횡요를 안겨준다. 이로 인해 거듭되는 배의 흔들림은 점심시간을 괴롭게 만들 조짐을 보인다. 얼른 속력을 반속으로 올려주며 뒷 파도로 탈 수 있게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항진하도록 침로를 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