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혹스러움을 안겨주는 선원상

by 전희태
JJS_29521.jpg 호주 뉴캐슬항 구라강 4번 선석 부두에서 새벽에도 선적 작업중인 모습



하선하여 귀국하게 된 1 기사, 2 항사, 2 기사가 시드니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새벽 네 시에 배를 떠날 예정이라 3시 30분에 깨어 달라고 엊저녁에 당직자에게 지시해두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되니 전화의 벨 소리가 울려왔다.

얼른 일어나 매무새를 고치고 하선자 들을 배웅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다가 마침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1 기사를 만난다.

그동안 승선 중에 수고했다며 하선을 위한 배웅의 인사를 건네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니 그에 응하여 손은 잡아 준다.

그렇게 잡았던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끝내어 그 손을 거두어들이면서, 갑자기 1 기사의 입에서 생각지도 안 했던 거친 말투의 막말이 튀어나온다.

-이놈의 회사는 이렇게 새벽부터 일으켜 세워, 비행기를 타라고 하니 이게 뭡니까?

- ………?

-출장 온 K과장도 그렇고, 회사 사장 놈도 다 똑같단 말입니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상하여 준비하는 일이 마뜩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긴 해도 입을 열면서 무조건 욕부터 한 그릇 안겨주고 나서 말을 진행하려는 1 기사의 상태는 이미 술 냄새가 주위에 팽배한 만취된 주정 상태로 보인다.


짧은 기간이나마 같이 타고 승선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정마저 들었던 동료 부하로 생각하여 이제 떠나게 된 그들을 위해 일부러 배웅하러 새벽잠을 거두고 내려온 내 마음의 배려를 무시한 채 마구 떠들고 있는 그 친구의 술주정에 그만 내 마음은 싸늘히 닫혀 버린다.


꼭두새벽부터 한마디 쏘아주고 싶은 대꾸의 말 조차 꾹 참은 채, 방금 악수를 한 1 기사가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작고 따듯하고 보드라웠던 손의 감촉을 아직도 느끼고 있는 내 손에 눈길을 보낸다.

그런 부드러운 손을 가진 사람의 입이 왜 이렇게 거칠고 함부로 인 매너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분노와 씁쓸한 대인관계의 몹쓸 환경이 그를 떠나 그냥 뒤돌아 서게 만든다.


그리고 그간에 그 친구가 보여준 선상생활 태도를 곰곰이 되새겨 본다.

술을 좋아하고, 배가 육지에 닿으면 선내 일과를 무시한 채 어떻게라도 상륙하여 방탕한 생활에 빠져 들고 있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되새김된다.


아직까지 제 이름으로 등기된 집을 그 나이 되도록 장만하지 못한 채, 일 년에 서너 척의 배를 옮겨 타는 등 한 배에 승선한 기간이 두세 달이 고작인 고질적인 말썽꾸러기 선원이란 소문이 한솥밥을 먹고 있는 동료 선원들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었다.


어쩌다 그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모자라서 승선할 기회를 가졌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 친구가 보여준 승선 태도에서 이번 하선으로 우리 회사와의 인연도 끝나게 될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아울러 회사에서 그 친구를 또 다른 자매선으로 옮겨 승선시키려 한다면 결사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여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조차 품게 한다.


배를 타면서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가 이런 승선에 대한 확고한 마음가짐이 없이 말썽이나 부리는 선원을 동료로 만나서 생활하여야 할 때이다.

특히 한참 항해 중에 말썽을 일으켜서 하선하겠다는 말을 앞세워 가며 선내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선원을 만날 때는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은 것이다.


사실 이번 2 항사와 2 기사는 정식의 연가로 하선하는 것이지만, 1 기사는 하선할 시기가 아직 도래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의 입에서 하선하겠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회사에 보고하여 내리게 된 케이스였다.


결코 선원 같지 않은 선원으로 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할 부류로 구분되는 어찌 보면 인생의 낙오자도 될 수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당장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의 고립된 선상 생활에서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취급하기 아주 불편한 부류이므로 이렇듯 정식 하선으로 보내는 것이 그나마 본선의 선장으로선 무난한 해결이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속한 시간에 하선 선원을 비행장에 실어다 줄 차가 도착하였다. 기다리던 하선자들은 본선 갱웨이 레더를 따라 모두 본선에서 하선하였다.

그 친구 1 기사 덕분에 그동안 실제로 승선 중에 수고가 많았던 2 항사와 2 기사에게 제대로 된 작별의 인사도 못한 채 내려 보내게 된 것이 미안할 뿐이다.


이제 저 아래 부두에서 교대 버스의 차창 안에서 배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 보내는 그들 하선자들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무사히 귀국하여 가족의 품에 안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실어,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는 거로 그나마의 작별 인사를 끝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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